삼성전자가 반도체 패권을 이어가기 위한 선제 조치에 착수했다. 핵심은 평택에 반도체 2공장을 짓는 것이다. 특히 이번 투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출소한 지 단 이틀 만인 7일 경영위원회를 통해 전격적으로 결정된다.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나온 이후 첫 대규모 투자 의결이 되는 셈이다.
삼성은 일단 이번 투자 결정에 이 부회장이 직접 관여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재판 과정에서 삼성전자 경영에 전력투구하겠다는 의중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는 점에서 출소 후 경영진과의 만남 자리에서 관련 보고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서는 이번 투자 결정을 이 부회장의 합류로 삼성 특유의 ‘스피드 경영’이 한결 속도를 내는 증표로 받아들이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 임원은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메모리 시황이 예측이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어 오너의 빠른 판단과 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이 부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가 생각보다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출소 이틀 만에 전격적 투자 승인 의결=삼성은 지난해 7월 평택 반도체 1공장에 오는 2021년까지 총 30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2층 건물인 1공장 1층에는 낸드 라인이, 2층에는 D램 라인이 깔리고 있다. 지금은 D램 라인 증설이 한창이다. 삼성은 이런 와중에 1공장 바로 옆에 2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미 평택 공장에서는 터 닦기 등 기초공사가 진행 중이다. 투자 규모, 생산 제품 등은 아직 최종 결정되지는 않았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려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메모리·비메모리를 불문하고 반도체 시황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지 않느냐”며 “일단 건물부터 올리고 그즈음 시황을 판단해서 어떤 생산 라인을 깔지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모리 시황이 움츠린다면 D램이나 낸드 대신 시스템LSI 등 비메모리 라인이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 규모는 최대로 가정할 경우 1공장과 비슷한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삼성의 전체 시설투자 규모(43조4,000억원)의 70%에 해당하는 대규모다. 반도체 투자만 발라내면 지난해(27조 3,000억원)의 110% 수준이다. 그만큼 파격적인 투자로 볼 수 있다.
◇JY식 ‘스피드 경영’ 본격 시동 거나=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초청 간담회를 마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부회장의 삼성’을 유추해볼 수 있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졌다. 그는 앞으로 경영 방향과 관련해 “이제 스피드 경영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 직후 7일 경영위원회가 열리고 여기서 평택 투자가 결정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비이락으로 볼 수도 있지만, 구심점 붕괴로 추동력을 잃어가던 삼성의 확 바뀐 면모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이사회 산하 사내 이사들로 구성된 경영위원회의 정식 멤버는 아니다”라며 “하지만 등기이사로서 당연히 의사결정에 참여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삼성이 자율주행·가상현실·인공지능(AI)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는 메모리 수요에 맞춰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여건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반도체 굴기를 천명한 중국의 압박에도 이 부회장이 남다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국은 메모리 가격을 놓고 삼성·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를 상대로 노골적인 견제에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은 스스로 물러나기까지 5년간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이라는 ‘보아오 포럼’의 상임이사로 일했다. 이를 통해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내 실력자들과 교우해온 만큼 메모리 강자 수성을 위한 ‘든든한 방어벽’ 역할을 수행해주리란 기대감이 크다. 삼성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이 부회장 부재 기간인 근 1년 동안 회사가 보이지 않게 힘든 구석이 많았다”며 “오너가 전문경영인들의 주요 의사결정을 뒷받침해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상훈·한재영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