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성수대교’와 1980년대 총 길이 1,900㎞의 송수관을 자랑하는 ‘리비아 대수로’를 만든 기업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기업(동아건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어요. 인류 역사상 대역사(大役事)로 불리는 프로젝트를 완수한 기업이 어찌 한참 낮은 난도의 성수대교를 그 모양으로 만든 것일까요. 더구나 리비아는 일교차가 40도 이상 나는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동아건설은 리비아 대수로는 물론 해외에서 부실공사로 사달이 난 적이 없었어요. 결국 성수대교 붕괴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 어딘가에 다른 나라에 없는 어떤 결함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아직도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
얼마 전 한 대기업 임원이 들려준 얘기다. ‘본질을 건드리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일 처리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 공감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문제가 발생하면 환부를 세밀하게 도려내기보다 잠시 고통을 잊기 위한 모르핀 처방에 길들여져가는 듯하다. ‘화풀이를 위한 희생양 삼기’ ‘비본질로 본질 덮기’ 등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 결과 작았던 종양은 악성인 암으로 변해간다.
성수대교에서 가진 반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를 보자.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삼성전자이지만 뇌물 게이트가 발생한 곳은 오직 한국뿐이다. 한국만의 독소가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치권력의 전횡, 여론과 외압에 흔들리는 사법부 등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는 다들 쉬쉬한다. 재수 없이 걸린 사람만 억울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출범 9개월째인 문재인 정부의 ‘본질 외면’ 경향도 유별난 데가 있다. 이 정부는 청년 일자리가 없다고 하자 공무원을 늘렸다. 규제 완화 등을 통한 기업 투자 확대 등은 외면한 채 세금으로 일자리를 떠받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은 점입가경에 가깝다. 영세 업체를 돕는다고 최저임금 인상분을 재정으로 보조해주기로 하더니 뜻밖에도 기업의 자금 신청이 거의 없자 이번에는 관료에게 정책 홍보차 골목을 누비도록 했다. 정작 우리의 형편을 넘어서는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에는 눈감고서 말이다.
특수활동비 논란도 전직 국정원장의 사법 처리만 기억에 또렷하다. 제도 개선은 뒷전이 됐다. 평창올림픽과 얽힌 북핵 이슈는 또 어떤가. 정부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로 평화가 곧 올 것처럼 미화하지만 북핵 사태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정부의 지나친 대북 쏠림이 한미 동맹의 틈을 벌려 올림픽 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 늘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렵다고 하는 모양이다./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