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민주당 상원 지도부가 7일(현지시간) 초당적 장기 예산안 처리에 전격 합의하면서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위기는 5개월여 만에 해소됐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양당이 각각 관심예산을 늘리는 바람에 향후 2년간 정부 지출은 대폭 확대된다. 미 재정적자가 내년에 연간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막대한 적자 부담이 미 경제위기의 새로운 불씨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규모 감세에 이어 정부 지출까지 확대되면서 정부 부채 증가가 불가피해지자 미 국채금리는 지난 5일 뉴욕증시 폭락을 촉발할 당시보다 가파르게 치솟으며 시장의 불안 심리를 부추겼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와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2년 기한의 장기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공화·민주당은 이민정책과 국경장벽 건설을 둘러싼 이견으로 지난해 9월 말이 기한이었던 2018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지난 5개월 동안 2주~1개월짜리 임시 예산안으로 정부 살림을 꾸려왔다. 지난달 20일에는 임시 예산안 통과마저 불발돼 사흘간 연방정부가 셧다운됐고 8일까지 임시 예산안을 연장하지 않으면 또 셧다운이 발생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6일 하원에서 다섯 번째 임시 예산안이 통과된 뒤 회동한 상원 양당 지도부는 내년까지 이어갈 2년간의 장기 예산안에 ‘깜짝’ 합의하며 셧다운 우려를 사실상 원천 해소했다. 상원 지도부가 마련한 초당적 합의안은 정부 지출 시한인 8일까지 상원과 하원을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관측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합의가 공화당에서 앞세운 국방비 증액과 민주당이 요구한 비국방 예산 확대를 양측이 서로 수용하면서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내년 9월 말까지 국방비는 1,650억달러, 인프라 투자와 약물남용 대책 등 민주당이 원한 비국방예산은 1,310억달러씩 각각 늘어나 총 2,960억달러의 예산이 증액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당은 다음달까지가 기한인 20조달러의 연방정부 부채 상한선을 인상하는 방침에도 합의했다. 백악관과 예산안 타협에 관한 협의를 마친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는 “완벽한 합의는 아니지만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으려 최대한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는 “오랫동안 반복된 예산위기를 해소할 진정한 돌파구”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양당이 세수증대 방안 없이 각각 원하는 예산을 늘리는 데 집착해 가뜩이나 불어나고 있는 미 재정적자가 훨씬 더 커지게 됐다고 미 언론들은 일제히 지적했다. 공영라디오 NPR는 “감세로 내년도 재정적자는 당초 7,000억달러에서 9,75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는데 지출 예산까지 늘어 재정적자는 1조달러를 웃돌게 된다”고 보도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정부 적자가 늘면서 국채발행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관측 속에 채권금리가 급등했다. 이날 오후 10년물 미 국채금리는 장중 9bp(1bp=0.01%) 이상 오르며 2.86%에 달했다. 이는 5일 증시 패닉의 단초였던 금리 수준(2.85%)보다 높은 것이다. 국채금리가 치솟으면서 장중 상승세를 보이던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지수는 장 막판 급락해 0.08% 하락 마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미 20조달러를 넘어선 정부 부채의 이자비용만으로도 매년 적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감세와 지출 확대가 더해지며 재정적자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미 경제에 암초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국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면 이자율을 높여야 하는데 이 경우 시중금리 오름세는 빨라지고 이는 기업 자금조달 비용 등을 늘려 경제위축과 증시하락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앞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최근 주식과 채권의 거품을 꺼뜨릴 방아쇠로 미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를 꼽았으며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세계 경제를 위협할 3대 리스크 중 하나로 미국의 재정적자를 지목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