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

연세대 철학과 교수

<67> 조직역량 키우는 최선책

결과 만능주의 빠져 과정 무시땐

협력의 가치 잃고 조직 와해 불러

무임승차자 없는 근무환경 중요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테니스할 때 어디를 보고 쳐야 하는가. 공을 보고 치는가. 그러면 벌써 늦다. 상대방을 보고 쳐야 한다. 그런데 상대방의 어디를 보고 치는가. 많은 학생들이 상대방의 눈을 본다고 말하는데 사실 테니스를 하면서 상대방의 눈은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복싱이면 또 몰라도. 상대방의 발 방향을 보면 상대방이 공을 왼쪽 또는 오른쪽 중 어디로 칠지가 감이 온단다. 이전에 테니스를 배우던 시절 코치한테 들은 이야기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매사 결과만을 중시하는 상사들이 있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 나쁜 거다. 모든 것이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달렸다. 과정은 한마디로 무시된다. 이런 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은 마치 테니스를 하면서 스코어보드만 쳐다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코어는 테니스를 하는 과정에 대한 평가에 불과하다. 스코어만을 보면서 테니스를 하면 당연히 진다. 스코어에 따라 초조해지거나 들뜨게 되면 테니스에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결국 지게 된다. 머릿속에 공 대신 스코어가 자리 잡고 있으니 될 리가 없다.

1015A27 철학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 하나를 해봤다. 성적이 잘 나온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 “야, 너 참 머리가 똑똑한가 보다. 시험 성적이 이렇게 잘 나온 것을 보면”이라고 지능을 칭찬해준다. 또 다른 그룹에게는 “야, 너 참 열심히 공부했나 보다. 성적을 잘 받은 것을 보니”라고 노력을 칭찬해줬다. 그 이후로 어느 쪽 학생들이 더 공부를 잘하게 됐을까. 지능을 칭찬받은 학생들은 자신들이 시험을 잘 못 볼 때마다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자기 통제 범위 밖에 있는 지능에 결과의 원인을 돌리면 노력할 생각은 안 하고 나쁜 머리를 물려준 부모와 조상만을 탓하게 된다. 반면 노력을 인정받은 학생들은 시험을 못 보고 나면 성적을 올리기 위해 더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계속 노력하는 사람을 당해 낼 재간은 없지 않겠는가.


옛날 옛적 교수님들이 학생들 논문을 지도할 때 있었던 일이라고 들었던 이야기다. 학생이 열심히 논문 초고를 작성해온다. 그러면 거기 책상 위에 놓고 가라고 말한다.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몇 주 후 학생을 불러서 묻는다. “자네 이거 제대로 쓴 것으로 생각하나” 대부분 “아닙니다”라고 답한다. 누가 초고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그럼 다시 써오게”라고 말한다. 그러면 정성 들여 고쳐서 가져온다.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몇 주 후 불러서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그래서 세 번째 고쳐왔을 때 읽어보면 고쳐줘야 할 부분이 제대로 보인단다. 요즘 이렇게 하면 안 먹힌다. 오히려 역효과 난다.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것은 고치는 과정을 많이 거칠수록 문장은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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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과제를 내 줄 때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개별과제다. 개인의 퍼포먼스를 측정하기에 좋다. 그러나 단점은 협동심을 알 수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룹 과제를 동시에 주고는 그 조원들 모두에게 같은 평가를 준다. 문제는 무임승차자가 나오면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다. 조모임 할 때 보면 늘 지각하거나 안 나오는 조원들이 있다. 물어보면 별의별 이유가 다 나온다.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갔다 왔다” “미국에서 3년 만에 친구가 왔다” 등등. 이런 무임승차자를 방지하기 위한 좋은 방법의 하나는 과제물을 제출할 때 그 과정을 기록한 보고서 1페이지를 같이 제출하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위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양심을 속여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에 집착하지 마라. 과정도 중시하라. 결과는 확인하기가 쉽다. 왜. 항상 숫자로 드러나기 쉽기 때문이다. 과정은 확인하기가 힘들다.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왕왕 숫자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숫자로 환산된다고 다 중요한 것도 아니고 중요하다고 다 숫자로 환산되는 것도 아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협동해 일을 처리하는 것이 비즈니스다. 그 상황 속에서 과정을 무시하는 조직은 조직원들 모두를 잠재적 무임승차자로 만드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조직 역량을 육성하는 최상의 방책은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과정을 중시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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