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형사합의2부(제갈창 부장판사)는 지난 5일 제주 4·3사건 수형인들이 제기한 ‘4·3 재심 청구’에 대한 심리를 진행했다. 이들 수형자 18명은 1948년과 1949년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 등에서 내란죄 등으로 최소 1년에서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6·25와 군사정부 독재 등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에는 이처럼 수많은 억울한 판결이 있었다. 이런 억울함을 뒤늦게라도 풀기 위해 법원에는 지금도 재심 청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개봉해 국내에서 24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영화 ‘재심’은 고문과 강압이 더해진 부실 수사로 살인 누명을 쓴 최모씨의 이야기를 그렸다. 최씨는 2000년 8월 전북 익산에서 일어난 택시기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최씨는 만기 복역 후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고 2016년 11월17일 광주고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3년 진범인 김모씨를 체포한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의 공로도 컸다.
영화 재심은 수사상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경찰과 검사의 모습을 낱낱이 드러낸다. 오히려 영화는 경찰이 자백을 받기 위해 최씨를 잔인하게 폭행한 사실을 일부 생략했을 정도다.
다만 영화 밖 현실의 재심은 최씨처럼 억울함을 풀기 위한 사례만 있지는 않다. 상당수 재심 청구는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률 조항에 관한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대법원 자료를 인용해 “헌재가 2015년 2월 장발장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상습절도)과 간통죄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2015년 이후 재심 청구가 급증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 사법연감을 보면 2014년 589건이었던 재심 청구 건수(형사사건 1심에 대한 재심 청구)는 2015년 3,878건으로 급증했다가 지난해 1,500건으로 급감하는 등 해마다 널뛰는 모양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2016년엔 화물차 운전사가 저지른 특정 위법행위에 대해 고용주를 면책 없이 처벌하도록 한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되자 관련 재심 청구가 급증했었다”며 “법조계에는 위헌 결정이 날 때마다 한꺼번에 재심 청구가 몰려 ‘브로커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재심에서 무죄를 인정받는 비율도 10% 미만으로 낮은 편이다. 지난 3년간 형사사건 1심에 대한 재심 처리 사례에서 무죄로 판결이 난 비율은 연도별로 5~9%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