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급물살을 타면서 숨죽였던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확산된 화해 분위기가 끊겼던 금강산 관광 재개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13일 현대그룹에 따르면 현정은 회장은 지난 11일 통일부의 초청을 받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도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상황이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후 남북 간 성사될 수도 있는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재개는 물론 문화 및 관광사업 교류는 빠지기 어려운 의제로 꼽힌다. 현 회장도 신년사에 “선대 회장님의 유지인 남북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은 반드시 현대그룹에 의해 꽃을 피워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대북 사업 재개는 현대그룹의 침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다. 한때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증권과 현대상선을 잃은 후 중 자산 2조원대의 중견그룹 수준으로 덩치가 줄었다. 여기에 옛 그룹사와 내홍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16일 현정은 회장 등 전직 임원 5명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까지 했다.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과정에서 1,094억원의 자금을 인수를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에 후순위로 투자하고 5년간 영업이익(162억원)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아 회사에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현대상선과 현대그룹은 서울 연지동 현대사옥에 마주 보는 건물을 한 채씩 사용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당시 일말의 상의도 않고 고소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는 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그룹은 1976년 현대상선을 설립한 후 수십 년간 공을 들여 글로벌 선사로 키웠다. 2016년 산업은행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현 회장은 사재 300억원을 출연하고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 매각을 통해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처럼 공중 분해되는 것을 막았는데 이제 와 칼을 겨눴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산 규모가 현대그룹은 중견그룹 수준인 2조원대로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40년간 한솥밥을 먹던 현대상선의 옛 주인인 현정은 회장과 분쟁이 길어지면 그룹사 간 사업에도 불똥이 튄다. 이 경우 특히 정보기술(IT)·물류 인프라 사업을 맡고 있는 현대유엔아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과 2016년 계열이 분리된 후에도 현대유엔아이(27.28%)의 주식을 보유한 3대 주주다. 현대유엔아이의 매출액(2016년 기준, 1,081억원) 가운데 현대상선 비중은 27.2%(294억원)에 달한다. 최근 2년간 순손실을 기록 중인데 현대상선마저 떠나면 경영은 치명타를 입는다. 현대상선은 이미 지난해 3·4분기 분기보고서에 돌연 현대유엔아이 지분을 계열사가 아닌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한 상태다. 최근 글로벌 물류회사들이 블록체인 등 혁신기술을 적용해 IT 인프라를 개선한다는 이유인데 결국 현대유엔아이에 기댄 IT 부문을 독립하겠다는 취지다. 현대상선은 삼성SDS와 블록체인 기반 인프라를 개발하는 등 IT 독립을 공공연히 밝힌 상황이다.
여기에 그룹 차원의 신산업도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 지난달 현대엘리베이터의 자회사 현대엘앤알은 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반얀트리호텔)가 약 413억원 규모로 유상증자에 참여해 빚을 갚아줬다. 현 회장은 당시 1,600억원을 들여 반얀트리 호텔을 인수했는데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현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투자파트너스를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여신전문금융사로 키우기 위해 약 100억원을 출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기 투자를 목표로 하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 그룹에 이익을 가져오기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오랫동안 공들여온 대북 사업이 재개되면 그룹 실적은 물론 신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대아산은 지난 10년간 1조5,000억원의 누적 손실을 보면서도 대북 사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화해 모드가 대북 사업 재개로 가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다”며 “다만 구체적인 계획이나 진행 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