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센티브의 역설’을 아시는지. 인센티브가 사람들의 내적 동기를 오히려 파괴할 수 있다는 게 그 내용이다. 인센티브의 역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물질적 인센티브나 조건이 사람들의 동기를 이끌어 내는 주요 동력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의 후배 중에 재테크에 대한 안목과 실력이 개그맨 김생민 뺨치는 수준인 김 실장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알뜰하기 그지없는 알부자 직장인입니다. 대출금 8,000만 원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한 그는 맞벌이 1년 만에 빚을 다 갚고 지금은 수 억 원 수준의 투자금을 굴리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닙니다. 돈을 적게 써서, 아니, 안 써서입니다. 그 친구가 몇 년 전 부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장사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아내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실물경제 달인답게 다양한 검토와 분석을 거쳐 그가 시작한 건 자그마한 A브랜드 여성속옷 가게였습니다. 매장을 얻고 물건을 들이며 오픈 준비가 착착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일하는 직원이었습니다. 여자 속옷을 파는 가게이다 보니 남자인 김 실장이 직접 도와주기 힘들고, 그렇다고 아내 혼자 가게를 꾸려 나가기에도 여러 모로 힘든 점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을 구해야 했습니다. 김 실장은 바로 채용공고를 냈습니다. 월급 300만 원에 주 2일 휴무. 그가 내건 채용 조건이었습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월급 150만 원에 주 1일 휴무 조건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내건 파격적 조건이었습니다. 당장 주변 가게 사장님들이 앞다퉈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장사 어떻게 하려고 하냐”며 야단도 아니었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돈만 버리는 거라는 비아냥에도 김 실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김 실장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제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의 수준이 달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훌륭한 인재들이 앞다퉈 몰려 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채용한 사람은 모 백화점 명품관에서 일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직 중이던 직원이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도 한참 떨어진 부도심 허름한 상가의 작은 가게로선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든 수준의 인재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직원은 훨훨 날았습니다. 다른 가게 직원들이 고객 행복은커녕 고객 만족 근처에도 못 가고 있을 때, 이 직원은 세상에 둘도 없는 VIP 모시듯 손님들을 대했습니다. 성심을 다해서 말입니다. 매출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음은 불문가지입니다.
단지 급여만 많이 준 게 아니었습니다. 신뢰를 함께 주었습니다. 거기에 존중이 더해졌습니다. 손바닥 만한 가게였지만 주인 부부가 인간적인 존중과 함께 자신을 믿고 모든 걸 맡겨주니 직원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다른 가게 직원들보다 두 배 이상의 월급을 줬지만 가게 전체의 매출과 수익은 그 몇 배로 되돌아왔습니다. 직원을 ‘도구’로 대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수평적 파트너’로 대한 김 실장의 리더십 덕분이었습니다.
칠흑처럼 어두운 비즈니스 환경입니다. 끝을 알 수 없는 불황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매섭습니다. 많은 기업이 경영 효율화라는 미명 아래 다양한 방법으로 인건비를 줄이려 애를 씁니다. 그중 하나가 기본급을 낮추고 성과급을 책정하는 겁니다. 성과에 관계없이 지급하던 기본급 대신, 성과와 연동해 인건비를 지급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 같지 않습니다. 인센티브를 줬더니 성과가 오히려 떨어집니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은 인센티브와 성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어느 공장에서 직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인센티브를 걸었습니다. 생산 실적이 평소보다 좋은 1번 그룹에겐 30달러의 보너스를, 2번 그룹에겐 피자 한 판을, 3번 그룹에겐 직속 상사의 격려 메시지를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첫날, 1, 2, 3번 그룹의 생산성은 각각 4.9%, 6.7%, 6.6% 올랐습니다. 돈 30달러보다 상사의 격려가 더 큰 동기부여 효과를 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5주 후 결과입니다. 1번 그룹의 생산성이 평소 대비 6.5% 떨어지고 2번 그룹 생산성이 2.1% 하락한 반면, 3번 그룹의 생산성은 0.64%가 올랐습니다. 단기적인 효과가 있을 것처럼 보였던 돈과 피자 같은 물질적 인센티브가 장기적으론 생산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나타낸 겁니다. 미국 듀크대학교 댄 애리얼리 교수가 이스라엘 인텔 공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입니다.
중요한 건 인센티브가 아니라 업무 그 자체입니다. ‘10분 안에 나를 웃기면 인센티브 1억 원’이라 하면 그 어떤 훌륭한 코미디언도 나를 웃기기가 힘듭니다. 인센티브는 ‘목표’가 아니라 인센티브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남을 웃기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창의성이 1억 원을 받겠다는 조급함에 갇혀 버리는 겁니다.
다니엘 핑크는 동기 부여의 세 가지 요소로 자율(Autonomy)과 성장(Mastery), 의미(Purpose)를 꼽았습니다. 사람은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주도권을 가진 일에 열정을 쏟아 붓습니
다. 어떤 일을 통해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에너지가 넘쳐 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 의미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보람에 힘든 줄을 모릅니다. 물질적 인센티브나 조건이 사람들의 동기를 이끌어 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인센티브는 사람들의 내적 동기를 오히려 파괴한다는 겁니다. 이른바 ‘인센티브의 역설’입니다.
여기 인센티브의 역설을 지혜롭게 막아낸 사례들이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업계 최고의 연봉을 지급합니다. 보너스는 없습니다. 그저 높은 급여를 지급합니다. 높은 연봉을 제공하니 자연스레 양질의 직원이 들어옵니다. 조건에 따라 내가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따지는 대신 직원들은 업무에 몰입합니다. 효과적인 업무 설계와 효율적인 업무 진행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물입니다. 물론 모든 기업이 업계 최고의 연봉을 줄 수는 없습니다. 관건은 직원들의 삶을 보듬어 안으려는 기업의 노력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직원을 존중하고 대접하는 노력이 직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경기가 안 좋습니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더 줄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매출이 감소했을 때, 적은 금액이나마 오히려 직원들의 연봉을 올려줬던 코스트코 CEO 제임스 시니걸의 말입니다.
후배 김 실장의 얘기가 귓가에 아른거립니다. “형님, 다른 거 없습니다. 지금 내 일자리가 그만두기에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면 됩니다.” 요는, 누구나 일하고 싶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겁니다. 그러면 인재는 몰려 옵니다. 그런 인재들에게 조건에 따른 인센티브를 내거는 일은 금물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스스로 재미와 의미를 부여하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했습니다. 하지만 현명한 리더라면 칭찬, 즉 인센티브가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인센티브를 줘서 춤추는 고래는 인센티브가 끊기는 순간 더 이상 춤을 추지 않습니다. 관건은 고래 스스로 춤을 즐기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글_안병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