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 스니커즈 마니아 김모(30대)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백화점에서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 스니커즈’를 구입한 뒤 포장을 뜯어 살펴보니 신발 안쪽에 ‘메이드인 차이나’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명품이니 당연히 ‘이탈리아산’이겠지 생각했다. 매장에 문의해보니 “17FW 모델까지는 이탈리아에서 제조되고 18SS 제품부터 원산지를 옮겨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는 “20만원이면 사는 중국산 짝퉁을 내가 100만원 넘게 주고 산 것이나 다름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업계 전문가들은 “소수의 브랜드를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대량생산 체제인 만큼 희소성·장인정신·전통을 내세우는 명품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며 “이제는 소비자들이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떼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렌시아가가 정초부터 히트제품인 ‘트리플S스니커즈’의 원산지 논란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해당 제품이 잘 팔리자 이탈리아산을 중국산으로 슬그머니 둔갑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발렌시아가 측은 원산지를 변경하면서 소비자들에 이 같은 내용을 일절 고지하지 않아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원산지 논란도 소비자들이 항의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발렌시아가는 17FW 제품까지만 해도 신발을 벗으면 바로 보이는 인솔 부분에 이탈리아산임을 표시했다. 반면 이후 제품부터 중국산 표시를 신발 혓바닥 안쪽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원산지가 바뀐 것을 소비자가 알아차리기 힘들게 하려고 이렇게 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블로그 등에서는 김씨 같은 소비자들이 17FW 제품과 18SS 제품을 비교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발렌시아가를 필두로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원산지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들 럭셔리 브랜드 상당수의 원산지가 동유럽 제3국이나 중국이다. 인건비가 저렴한 제3국에서 90%를 만든 후 이탈리아로 옮겨 마지막 라벨을 다는 꼼수로 이탈리아산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아예 눈속임도 포기하고 중국 공장에서 대량생산 체제로 찍어내는 제품까지 있다. 스스로 짝퉁인 듯 짝퉁 아닌, 명품을 위장한 ‘페이크 명품’이 돼버린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소수의 브랜드만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대량 생산 체제인 만큼 희소성, 장인정신, 전통을 내세우는 명품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며 “이제는 소비자들이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떼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래 명품은 대대로 전수된 노하우를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들어 희소성을 가지며 소장 가치가 있는 제품을 뜻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럭셔리 브랜드들은 갈수록 높아지는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인건비가 싼 제3국이나 중국에서 생산해 ‘메이드 인 이탈리아’ 라벨을 달고 있는 실정이다. 스스로 짝퉁인 듯 짝퉁 아닌, 명품을 위장한 ‘페이크 명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탈리아산으로 둔갑시키는 불량양심의 대표주자로는 루이비통이 꼽힌다. 저개발국에서 제품을 거의 완성한 뒤 유럽에서 마무리하는 식이다. 루이비통 슈즈의 경우 루마니아 공장에서 90% 완성한 신발을 이탈리아로 보내 밑창을 붙여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만들도록 했다. 유럽연합은 2개국 이상에서 제품을 제조할 경우 마지막 공정이 진행된 곳을 원산지로 표시하도록 해 루이비통은 이를 교묘히 활용했다. 루마니아 임금은 이탈리아의 15분의 1수준이지만 신발 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루이비통은 폭리를 취한다. 가방 부속품의 경우도 루마니아산이다. 루이비통의 명함지갑과 같은 소품의 일부는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 등지에서 만들어 ‘메이드 인 스페인’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면세점에서 루이비통 명함지갑을 구입한 주부 심현정(39)씨는 “루이비통이 명품의 원산지인 프랑스산이라는 이유도 루이비통을 구매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데 사고 난 후 ‘메이드 인 스페인’이라고 쓰여 있어서 조금 황당했다”고 말했다. 고가의 샤넬백 역시 프랑스, 이탈리아 외에 스페인에서 종종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미 2007년 프랑스 현지 방송국은 프라다와 구찌가 루이비통 슈즈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구찌는 2004년부터 스니커즈 중 일부를 세르비아에서 만들고 프라다는 신발 윗부분을 슬로베니아에서 생산하고 있다.
프라다를 중심으로 버버리, 아르마니, 발리, 돌체앤가바나, 미우미우 등의 럭셔리 브랜드들은 상당 부분 중국에서 만든다.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월스트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제조 기술이 좋기 때문에 머잖아 누구나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이로써 프라다는 가방, 의류, 신발의 20% 넘게 중국에서 제조하고 있고 이보다 더 인건비가 싼 베트남, 터키, 루마니아 등에도 생산기지를 갖췄다. 파트리치오 베르텔리 프라다 최고경영자는 “이탈리아의 장인정신과 디자인 전문성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이탈리아 패션산업의 기본 정신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며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강조했지만 정작 제조여건이 싼 중국, 동남아시아로 생산기지를 올리는 모습은 부조리하다는 지적이다. 이로써 프라다는 소비자들이 갈수록 등을 돌리면서 매년 매출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영국산 버버리 역시 찾기 힘들며 중국산 버버리들이 판을 친다. 레플리카(짝퉁)들과 경쟁하듯 팔리는 버버리는 고리타분한 클래식의 전형으로 평가받아 프라다와 더불어 하향세다. 버버리는 패션쇼 런웨이에서 공개한 콜렉션을 바로 다음날 부티크나 백화점을 통해 판매하는 혁신적인 판매 방식을 도입했지만 이슈에만 그치고 매출로는 이어지지 않았을 정도로 한물간 브랜드로 꼽힌다. 이 같은 책임을 물어 글로벌 버버리 CEO와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 크리스포터 베일리가 곧 교체된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갈수록 인건비가 저렴한 곳으로 이동해 제품을 ‘찍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계속 올리고 있어 전세계 고객을 호갱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난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비쌀수록 잘 팔리는 베블렌 효과가 잘 먹히는 한국에서만 샤넬은 지난해 3차례나 가격을 올렸고 에르메스도 올 들어 1년 만에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구찌도 지난 4월 이어 혼수철에 맞춰 9월에 또 다시 인상한 한편 발렌시아가는 단번에 30% 대폭 가격을 올려 호갱 논란이 일었다. 그 뒤를 이어 고야드는 2월 1일부로 7% 가량 가격을 올렸다. /심희정·변수연기자 yvett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