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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알람은 안녕…여기까지 온 내게 100점 주고싶어"

500m 은빛질주 펼친 이상화

훈련 위해 알람 7개 맞추고 생활

이젠 하고 싶은 것 다하며 쉴것

은퇴는 아직…1·2년 더 뛸수도

'이미 레전드' 응원에 큰 위안

다독여준 고다이라는 대인배

‘빙속여제’ 이상화가 19일 기자회견 중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빙속여제’ 이상화가 19일 기자회견 중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은메달을 따면 약간 죄인이 된 기분이 많이 들었어요. 근데 그 문구 하나만으로도 힘이 됐고 큰 위안이 된 것 같아요.”


‘당신은 이미 레전드’. 이상화(29·스포츠토토)는 이 응원 문구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이상화는 19일 강릉 올림픽파크의 팀 코리아 하우스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은메달로 시작해서 올림픽 은메달로 마무리하게 됐다. 그동안 (월드컵) 은메달을 따면 죄인 같은 기분이 들어서 사실 많이 힘들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보내준 ‘당신은 이미 레전드’라는 인터넷 댓글을 보고 큰 힘을 얻었다”며 “어제(18일)도 경기장에 그 문구가 걸려 있었다. 큰 위안을 받고 경기했다”고 돌아봤다.

이상화는 지난 18일 끝난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빙속) 여자 500m 은메달로 올림픽 3회 연속 메달의 대기록을 남겼다. 기대했던 올림픽 3연속 금메달은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32·일본)에게 막혀 좌절됐지만 네 번째 올림픽을 마치고 만감이 교차한 듯 하염없이 우는 이상화의 모습에 많은 국민이 함께 울었다. 이날 회견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상화의 등 뒤로도 “잘했어요” “고생했어요” “힘내세요”라는 팬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이상화는 그런 팬들과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상화는 대회 전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강조했다. 4년 뒤 베이징올림픽은 정말 안 뛰는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상화는 “일단 능력이 있으면 다음 올림픽까지는 아니더라도 1~2년은 더 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당장 은퇴할 계획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다음 올림픽 도전에 대해서는 “앞에 닥친 것만 바라보는 스타일이라 거기까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만약 1~2년을 더 한다면 성적에 관계없이 정말 즐기는, 재밌는 스케이팅을 할 것 같다”고도 했다. “전설적인 선수로 남아 한국 스프린터 중에도 이런 선수가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고 싶다”고 말하면서는 “아, 이미 전설적인 선수로 남았죠”라고 덧붙이며 살짝 웃어 보였다.


고질적인 무릎 통증과 지난 시즌 겪은 종아리 부상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는 이상화는 “재활하고 좋아지는 저를 보면서 건재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고 올림픽을 목표로 (몸 상태를)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10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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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토리노 대회부터 올림픽에 참가해온 이상화는 올림픽 때마다 울었다. 처음에는 메달을 놓쳐 아쉽게 울었고 두 번의 금메달 순간에는 감격해 울었다. 이번에는 가장 많이 울었다. 그는 “2014소치올림픽은 정상의 위치에서 참가한 대회였고 그맘때 세계신기록도 세워서 스케이트 타는 게 정말 쉬웠다. 근데 소치 끝나고 부상이 겹치면서 감을 잃었고 되찾기까지 오래 걸렸다”며 “여기까지 온 자체가 저한테는 큰 과정이었기 때문에 그게 생각나서 그렇게 많이 운 것 같다. 압박과 부담이 한순간에 다 없어지니까 눈물이 나더라”고 돌아봤다.

이상화 인스타그램이상화 인스타그램


경기 영상은 되돌려보지 않았다. 이상화는 “마지막 코너에서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보면 더 아쉬울 것 같다. 먼 훗날 진정이 된다면 다시 보겠다”고 했다. 우승한 고다이라 나오에 대해서는 “1,000m를 포기한 저와 달리 그 선수는 저보다 나이도 많은데 1,000m·1,500m에도 출전했다. 경기 끝나고 정말 대단하다고 말해줬다. 고다이라도 저를 격려해줬는데 그런 마인드만 봐도 정말 ‘대인배’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 선수나 저나 대회 전에는 굉장히 예민했어요. 그래서 얘기를 나누기가 좀 그랬는데 끝나고 나서는 정말 다 내려놓고 서로 자연스럽게 축하를 주고받았습니다.”

이상화가 경기장을 떠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폰 알람을 끄는 것이었다. 그동안 새벽·오전·오후·야간훈련과 낮잠시간을 위해 7개나 알람을 맞춰놓고 생활했다는 설명. “이제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다”고 했다.

경기 후 문자메시지를 1,000개나 받았다는 이상화는 남은 올림픽은 쇼트트랙 계주와 아이스하키 응원을 하며 ‘관중 모드’로 보낼 생각이다. 친한 사이인 ‘피겨퀸’ 김연아도 ‘이제 편히 내려놓고 푹 쉰 뒤 곧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조만간 개인 짐을 빼러 훈련지인 캐나다로 떠날 때 어머니와 같이 가 여행을 즐길 예정이다. 이상화는 대표팀과 개인 코치 등 고마운 사람들을 열거한 뒤 이렇게 말했다. “올림픽 금메달 획득과 세계신기록을 낸 자부심으로 버텨왔고 이겨냈어요. 은메달도 칭찬해주시면 좋겠어요.”

/강릉=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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