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국내증시

"거수기 역할 이제 그만"...사외이사, 전문경영인 영입 늘어

■ 주총 시즌 맞은 상장기업 사외이사 선임 살펴보니

대기업 출신 중견업체로 영입돼 사업강화·먹거리 모색 역할

법률 자문·대관 업무 기대...법조·정치인 모시기도 여전



기업 사외이사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과거 기업 의사결정의 거수기나 리스크 요인의 방패막이 역할에 머물렀던 사외이사들은 전문성을 앞세우며 경영활동에도 직간접적인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 전문경영인들이 중견업체의 사외이사로 영입돼 기존 사업 강화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색하는 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기업의 리스크 관리를 위해 법조계 등의 인물들이 사외이사로 선호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사외이사들이 기업 의사결정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아 사외이사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2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상장기업들은 주총을 앞두고 법조인과 정치인 출신, 재계 인사 등 다양한 인물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있다. 국내 기초수액제제 1위 업체인 JW생명과학(234080)은 다음달 17일 주총에서 의외의 인물을 사외이사로 영입한다. JW생명과학이 영입한 사외이사는 이현순 두산 부회장. 이 부회장은 국산 1호 자동차 엔진인 ‘알파엔진’을 개발한 국내 자동차 엔진 분야의 산증인으로 현대차 연구개발총괄 부회장과 한국자동차공학회 회장을 거쳤다. 바이오·제약 기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엔지니어를 JW생명과학이 영입한 이유는 뭘까. 수액 생산공정은 100m가 넘는 파이프라인이 필요한 일종의 장치산업이다. JW생명과학은 자체개발한 영양수액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주력하며 제조기술에 생산설비까지 묶어 수출하는 수액 플랜트 사업도 추진 중이다. JW생명과학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두산에서 최고기술경영자(CTO)를 맡고 있는 이 부회장이 플랜트 수출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달라며 영입을 결정했다. JW생명과학 관계자는 “분야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제조업 기반의 회사인 만큼 사업 추진 과정에서 엔지니어 출신인 이 부회장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LG하우시스(108670)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 중인 자동차 소재부품 부문 강화에 맞는 이봉환 전 현대모비스 연구개발본부 부사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LG하우시스는 자동차 소재부품 사업이 부진하자 이미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민경집 부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내정했고 재계는 물론 학계(현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험도 풍부한 이봉환 전 부사장을 영입해 경쟁력 제고에 나설 계획이다. 이 전 부사장은 현대모비스 재직 당시 자동차 안전편의 시스템과 각종 부품 개발에 직접 참여했다.

기업 리스크 관리를 위해 검찰·법원 등 법조계나 공정위원회·국세청 등 사정기관 출신 인사들의 사외이사행은 여전하다. 신한지주는 대법관 출신인 박병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008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 때 지원받은 변호사비용을 놓고 재일교포 주주와 벌인 대여금 소송에서 주심 재판관으로 최종 승소 판결을 내렸다. 신한지주는 박 교수를 감사위원으로도 선임했다.


한솔그룹은 다수 계열사가 법조인 출신 영입에 가세했다. 한솔로지스틱스는 서울중앙지법에서 부장판사를 지낸 임복규 동인 변호사를, 한솔홀딩스(004150)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인 이승섭 태평양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삼성전기 역시 서울행정법원 법원장을 역임한 김용균 바른 변호사를 선임했다.

관련기사



법조인 출신은 기업 경영 리스크 중 하나인 법률적 이슈에 대응하는 데 큰 역할을 맡는다.

정부 정책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대관업무 역시 사외이사에게 부여된 역할 중 하나다. 기업들이 정관계 인사들을 영입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코오롱글로벌(003070)은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세기상사는 유수택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코오롱생명과학(102940)은 김영걸 전 서울시 행정2 부시장을 영입했다. 국민연금 등 투자 관련 기관 인사들 역시 기업의 영입 타깃이다. 태림포장은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을 담당했던 안태일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채권운용실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안 전 실장은 대우조선 채무재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 측과 막판까지 협상을 벌인 실무자로 오랜 기간 채권 운용 분야에 몸담은 채권통으로 알려져 있다. 윤영목 전 국민연금공단 투자자산관리단장도 화장품 유통업체 에이블씨엔씨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포스코는 업계 처음으로 이사회에서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를 추천했다. 주주제안은 소액주주들이 주주총회 등에 배당 확대, 이사·감사 선임 등 의안을 직접 제시하는 제도로 최근 주주가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경영감시를 강화하는 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공시위원장,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등을 지낸 지배구조 및 재무·금융 분야 전문가로 현재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가 사외이사로 추천됐다.

기업들이 다양한 역할을 기대하며 유력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하지만 경영진 견제이라는 본연의 기능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지배구조의 한 전문가는 “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을 영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외이사가 가지는 권한과 져야 할 책임은 약하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외이사가 견제 역할을 할 때 기업의 성과가 좋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규·김광수기자 exculpate2@sedaily.com

김광수·박성규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