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싱가포르의 태형

2315A39 만파식적


지난달 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2년 전 국회에서 만난 검찰 간부의 불성실한 답변 태도를 언급하며 “저도 태형(笞刑)에 반대하는데 정말 태형이 필요하다. 이건 몹시 쳐라(라고 해야 한다)”라고. 네티즌들도 가세했다. 후배 성추행 의혹에도 휩싸인 이 간부가 “술을 마셔 기억이 없다”고 해명하자 “기억이 날 때까지 태형을 내려라”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형벌에는 태형이 없어 이들의 바람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물론 실제 태형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라 분노의 표시였지 싶다. 우리나라에서 태형이 사라진 때는 1920년. 그전까지는 가벼운 죄를 지은 경우 물푸레나무로 만든 회초리로 엉덩이를 10~50대 쳤다. 태형보다 무거운 죄를 지으면 60~100대의 매를 맞는 장형(杖刑)에 처해 졌다. 흔히 곤장이라고 불리는 형벌이다.


유럽·아프리카에서도 유행하던 매질 형벌이 사라진 것은 20세기 중반 들어서다. 비인간적 형벌이라며 대다수 나라에서 폐지했다. 다만 일부 동남아·아프리카 국가에는 지금도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싱가포르. 영국 식민지 시절에 도입된 싱가포르의 태형은 1871년 형사소송법으로 제도화됐다. 처벌 대상은 18~50세의 남자로 매질 상한선은 24대. 여성과 50세 이상 남성, 사형수는 면제된다. 매는 굵기 1.27cm에 길이 1.2m의 등나무인데 유연하고 갈라지지 않도록 물에 담그고 방부제 처리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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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싱가포르가 태형을 고집하는 이유는 ‘공포를 통한 범죄예방 효과’다. 그 공포가 어찌나 강했는지 미국 대통령까지 움직인 적이 있다. 1994년 미국 청년이 잘못을 저질러 태형에 처해지자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선처를 베풀어달라는 ‘읍소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최근 싱가포르 정부가 은행 강도 후 영국으로 도주한 캐나다 남성에게 ‘태형 면제’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다. 태형 면제를 송환 조건으로 제시한 영국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싱가포르의 강경한 태도가 누그러질 것 같지는 않다. 내무부가 성명서까지 내며 “이번은 특별한 경우로 태형에 관한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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