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스포츠

무결점 연기 16세 은반 요정 평창을 흘렸다

[자기토바, 메드베데바 제치고 피겨퀸 등극]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등

난도 높은 7개 점프 완벽 소화

합계 239.57점...1.31점차 우승

러시아에 첫번째 금메달 안겨

"점프 놓쳐 경기중 구성요소 변화

떨렸지만 몸이 연습했던 것 기억"

23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 참가한 러시아출신 올림픽선수 알리나 자기토바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강릉=권욱기자.23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 참가한 러시아출신 올림픽선수 알리나 자기토바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강릉=권욱기자.




러시아 이젭스크에서 태어난 알리나 자기토바(16)는 열세 살이던 지난 2015년 비행기로 3시간 거리인 모스크바로 피겨스케이팅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선배가 바로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19). 같은 코치 아래서 자기토바는 메드베데바의 훈련파트너로 얼음을 지쳤다.


2015-2016시즌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메드베데바는 거의 모든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올림픽 전까지 15개 대회에서 13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 이 중 은메달 1개는 지난달 ‘평창동계올림픽 전초전’ 유럽선수권에서 기록한 것이다. 바로 이 대회에서 자기토바가 메드베데바를 넘고 우승해 올림픽에서의 치열한 2파전을 예고했다. ‘세기의 대결’로도 불렸다.

메드베데바의 훈련파트너였던 자기토바가 최고 무대인 올림픽에서 선배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기토바는 23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56.65점을 획득, 쇼트프로그램 합계 239.57점으로 메드베데바(238.26점)를 1.31점 차로 누르고 올림픽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갔다. 시니어 데뷔 시즌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관중석에서 이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기도 한 ‘피겨퀸’ 김연아는 만약 선수로 뛰었다면 어땠을 것 같으냐는 물음에 “저는 은퇴한 지 4년이 지났고 시즌마다 선수 실력부터 여러 가지가 다르다. 저는 아예 다른 시대의 사람이라서 비교하기 어렵다”며 웃어넘겼다. 김연아는 “제가 뛰던 시대와 달리 기술적으로 더 많은 선수가 성장했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1.31점의 박빙의 격차가 말해주듯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는 명불허전의 ‘불꽃 대결’을 펼쳤다. 이틀 전 쇼트프로그램에서 메드베데바가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나서 몇 분 뒤 바로 세계기록을 경신한 자기토바는 연기 시간이 긴 프리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난도 높은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를 비롯해 7개 점프 과제를 완벽에 가깝게 수행했다. 콤비네이션 점프의 첫 점프를 뛰지 못했지만 조금 지난 뒤 바로 점프를 만회했다. 다른 선수는 따라올 수 없는 기술에다 특유의 통통 튀는 듯한 표현력에 높은 점수가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56.65점.

관련기사



변수는 메드베데바였다. 160.46점의 프리 세계기록을 보유한 메드베데바도 자기토바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우아한 연기를 펼쳤다. 자기토바와 똑같은 156.65점. 쇼트에서의 1.31점 차가 최종 점수 차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발목 부상 탓에 잠시 은반을 떠나야 했던 메드베데바는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에서 클린 연기를 펼쳤다는 감정에 복받친 듯 마지막 동작을 마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메드베데바의 점수를 확인하고 우승을 확정한 자기토바는 옅은 미소만을 지으며 선배를 예우했다.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메드베데바를 꼭 안아주기도 했다. 둘은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메드베데바와의 관계에 대해 “경기에서는 물론 라이벌 의식도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다”라고 밝힌 자기토바는 메드베데바를 ‘제냐(메드베데바 애칭)’라고 부른다. 캐나다의 케이틀린 오스먼드가 231.02점으로 동메달. 한국의 최다빈은 199.26점으로 7위에 올랐다.

은메달을 딴 메드베데바(왼쪽)가 사진을 함께 찍자며 자기토바를 끌어당기고 있다./연합뉴스은메달을 딴 메드베데바(왼쪽)가 사진을 함께 찍자며 자기토바를 끌어당기고 있다./연합뉴스


자기토바가 연기를 마치고 나면 토끼나 쥐 캐릭터 인형이 관중석에서 쏟아진다. 이날도 그랬다. 자기토바가 친칠라(토끼목 동물)를 애완동물로 기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이스하키 감독인 자기토바의 이름 ‘알리나’는 러시아 리듬체조 선수 알리나 카바예바(올림픽 2000년 동·2004년 금메달)에서 따온 것이다. 다섯 살 때 피겨를 시작했고 모스크바의 할머니와 함께 사는 자기토바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며 감격해 했다. 그는 “연기 중에 점프요소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손은 떨렸지만 몸은 연습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며 “내 목표는 똑같다. 클린 연기를 하면서 피겨를 즐기고 기술과 감정을 관중에게 모자람 없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라는 이름으로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러시아는 자기토바의 금메달로 대회 첫 금메달을 신고했다.

/강릉=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양준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 태그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