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사설] 소송 걸린 기업 영업비밀도 제출하라니…

공정거래위원회가 소송과정에서 기업의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할 모양이다. 공정위 법집행체계개선 태스크포스(TF)는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피해자의 증거 확보에 도움이 되도록 서류나 도면, 디지털 정보 등 모든 자료 제출을 기업에 강제하고 만약 이를 거부하면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공정위가 느닷없이 기업 자료 제출을 들고 나온 것은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소송과정의 균형을 되찾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다고 기업의 영업기밀까지 공개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기업들로서는 애써 축적된 경영전략이나 핵심기술이 외부에 공개될 경우 치명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칫 경쟁사들이 소송과 관련 없는 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하면서 기술을 빼내 가는 창구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법원이 기업의 정보 공개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최근 삼성전자의 안전보건 실태를 공개하라며 제기된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회사 경쟁력과 영업상 이익을 상당히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생산라인 배치도는 물론 장비의 종류와 개수·작동방법까지 지적재산에 해당하는 영업비밀이라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특허법을 준용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일반 민사소송까지 확대한다면 과도한 기업경영권 침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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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하는 ‘부권(父權) 소송제’나 기업분할명령제도 역시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가가 공익적 관점에서 손해배상을 받아내겠다는 취지라지만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데다 자칫 정부가 기업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기업을 혼내줘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공정위의 편향된 인식이다. TF 권고안은 기업 처벌과 피해자 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정위가 규제혁파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는 역할은 포기한 채 언제까지 기업활동을 옥죄는 일에만 매달릴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라도 기업들의 소송 리스크를 고려해 법 개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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