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가 8년 전 간부 검사에게 당했던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이후 한국 사회가 변하고 있다. 4050여성들이 활시위를 당긴 ‘미투 (#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검찰을 넘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가해자인 남성들은 소위 ‘대가’ 또는 ‘실세’ 소리를 들어온, 권력의 정점에 선 늙은 남성들이다. 이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피해자들은 2030 여성들이 아니다. 서 검사를 비롯해 변호사 출신 여성 국회의원, 저명 시인, 전직 명문대 여자 교수, 해외 유학파 극단 대표 등 각자의 영역에서 입지를 다진 4050 커리어우먼들이다.
이들의 고백은 지렛대다. 다른 동년배 여성들은 물론 2030 여성들이 사회 곳곳에서 ‘미투’를 외치고 나섰다. 이번 ‘미투 운동’은 그래서 그동안 2030세대 중심의 페미니즘 운동과 결이 다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성적 착취를 일삼으면서도 사회적 묵인과 외면 속에서 단죄를 피했던 남성들의 민낯은 너무 추악하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머리를 숙이며 언급했던 ‘나쁜 관습’은 사실 ‘위력에 의한 간음’이었다. 구차한 변명의 이면에는 남성의 ‘갑질’에 숨 죽일 수밖에 없었던 우리 어머니와 누이·딸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이번 미투 운동은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페미니즘 논의와 궤를 같이한다. 지난해 50만부 이상 팔린, 30대 평범한 여성의 삶을 다룬 ‘82년생 김지영’은 미투로 가는 징검다리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컨센서스는 한편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응축돼왔다.
이미나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4050여성들의 외침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교수는 “4050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 분위기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사회생활을 감내했던 세대”라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공정한 민낯을 목격하면서도 관습적으로 숨을 죽이고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변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짚었다.
그는 “불합리해도 수용하고 적응하는 게 당연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데다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수적으로 많아지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면서 이제는 목소리를 내도 된다는 심리적 지지를 얻은 것”이라며 “각자 영역에서 성취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불공정한 모습도 목격했던 이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침묵했던 스스로에 대해 각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