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26일 ‘합병 관련 순환출자 금지 규정 해석지침’을 예규로 제정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삼성 측에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전부를 추가 매각하라고 통보했다. 6개월의 유예기간 내 팔지 않으면 공정위의 제재를 받게 된다.
이번에 예규로 제정된 새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은 공정위가 지난해 12월 변경한 원안이 그대로 반영됐다. 국무조정실은 이 예규가 사전규제심사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과정에서도 이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과정에서 삼성을 비롯한 57개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입장을 물었으나 돌아온 의견은 없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앞서 2015년 첫 가이드라인 제정 시 공정위는 순환출자 고리 내 소멸법인(옛 삼성물산)과 고리 밖 존속법인(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경우에 대해 순환출자 ‘강화’에 해당한다고 봤다. 삼성SDI에도 합병에 따른 추가 출자분(삼성물산 500만주)만큼만 매각하라고 했고 삼성은 이에 따랐다. 하지만 2년 뒤인 지난해 12월 이를 ‘순환출자 형성’이라고 보고 잔여지분도 모두 매각했어야 한다고 해석을 바꿨다. 공정위가 판단을 뒤집은 근거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이었다. 법원에서 청와대의 외압이 밝혀졌으므로 공정위도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위가 내용적 완결성은 물론 절차적 정당성도 지키지 못했던 점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5일 이 부회장이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경영권 승계 목적의 청탁 혐의를 일부 벗었지만 공정위는 ‘달라질 게 없다’는 입장이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이날 “삼성이 공정위를 상대로 로비를 벌여 (지분 처분에 관한) 공정위 결정을 변경한 사실은 항소심에서 판단하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대법 판결까지 아직 6개월 이상의 시간이 남았는데도 공정위가 성급하게 매각명령을 강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논란의 소지가 있는데도 서두르는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바꾼 순환출자 해석기준이 법적 구속력을 갖춘 예규로 제정됨에 따라 삼성SDI는 8월26일 자정까지 삼성물산 지분 404만2,758주를 모두 매각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한다. 26일 종가 기준 5,316억원어치다. 삼성SDI 관계자는 “예규의 적법성 여부와 무관하게 기한 내에 지분을 처분하는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건은 지분을 누구에게 어떻게 처분하는가다. 삼성SDI가 2016년 삼성물산 500만주(지분율 2.6%)를 매각할 당시에는 이 부회장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각각 0.7%와 1%가량을 인수했다. 하지만 최근 공정위가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 편법승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공익법인 전수조사를 진행 중인 만큼 이번에는 그때처럼 공익재단이 나서기 어렵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직접 지분을 매입하거나 삼성물산이 자사주로 사들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