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명칭은 설립자나 운영자의 경영철학을 담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영국전자의 사명은 그래서 더욱 범상치 않다. 김배훈 대표이사의 설명이다.
“영국신사와는 관계없고 나라가 번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회사명은 번영할 영(榮)에 나라 국(國)자를 써서 영국전자가 됐죠. 알다시피 60·70년대 우리가 얼마나 가난하고 힘들었습니까. 나라가 번영해야 국민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절실한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창업주인 아버님의 뜻이기도 했고요.”
㈜영국전자의 출발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중화학공업 육성에 매진하던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합리화란 관권주도형 경제정책을 시행했다. 이때까지 진공TV를 생산하던 개인기업인 영국전자는 TV생산 불가라는 금지 조치를 받는다. 70년대 TV를 생산할 수 있는 회사는 대한전선, 삼성, 금성뿐이었다.
김대표의 아버님은 생계형 불법 제조업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손재주가 좋으신 아버님이 만든 TV는 나름 성능을 인정받아 잘 팔렸는데, 저렴한 가격만이 아니라 입단속도 필수였다고 말한다. 불법이었으니까.
국내 CCTV업체가 진출해온 일반 감시용 CCTV시장은 4,000억 정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거대한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견 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공세에 밀려 고사 일보직전에 놓여있다. 특히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라는 사각 시대를 이용한 저가 중국산 CCTV의 국내 유입이 국내 CCTV기업을 더욱 옥죄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CCTV업계의 어려움 속에 영국전자 김배훈 대표의 선택은 과감하고 혁신적이다. 김 대표는 새로운 CCTV시장을 개척하면서 부가가치가 높고 기술력으로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분야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동안 축적된 기술력과 경험이면 세계 어느 산업현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한다.
CCTV 시장은 크게 두 분야로 나눈다. 첫째는 일반 감시용 카메라 시장이다. 2017년 현재 대한민국에는 치안 등 여러 이유로 전국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는데, 카메라 숫자만 80만대에 이르고 있다. 이중 40만대는 아날로그 방식에다 화질도 많이 떨어져 교체가 시급한 상황인데 중국산 저가 공세에 시장은 무척 혼란스런 상태다.
둘째는 산업 생산 현장에 필요한 특수 감시용 특수CCTV 시장이다. 기존 CCTV를 기성복이라고 한다면 산업현장 특수 감시용 CCTV 분야는 한마디로 맞춤옷 시장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각 산업별 생산현장의 조건과 특성에 맞게 CCTV를 설계, 제조 하는 고도의 전문 분야다. 특수용 CCTV 시장은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베트남 등에서 폭발적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제대로 된 선제 대응에 나선다면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할 수 있다.
영국전자가 중국에 지사를 설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문호를 개방한 이후 지난 40여년 동안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 만큼 커다란 경제발전을 이뤘다. 2018년 현재도 세계 제조공장의 50%는 중국에서 가동되고 있다.
김배훈 대표는 중국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일반적인 생각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중국은 그야말로 거대한 산업단지입니다. 이제 그들은 단순 노동이나 저가 공산품 생산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산업 고도화, 선진국형 기술집약 산업의 육성 등을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산업용 특수 CCTV카메라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김 대표가 중국을 거대한 시장으로 보는 또 하나의 이유로 맞춤형 CCTV를 다루는 숙련기술의 부재를 지적한다.
“아버지 곁에서 어깨 넘어 배운 것까지 하면 40년을 넘게 CCTV분야에 몸담고 있습니다. 70년대 중후반에는 주로 수리를 전문으로 하면서 독일 수입제품, 일본 제품, 미국 제품 등 선진국의 다양한 제품군의 특성을 관찰하고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다 원천 기술이 돼서 산업현장에 필요한 CCTV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거죠.”
중국은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기에는 공업화, 산업화 시간이 너무 짧고 국토가 넓어 이종 산업간 교류가 힘들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 현장에서도 ‘안전과 효율’를 목표로 생산 공정들을 재구축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생각지도 못한 여러 환경을 제시하면서 이에 맞는 CCTV 제작을 요구하고 있다.
“힘들죠. 그러나 재미도 있습니다. 생산 책임자들이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을 같이 고민하고 여러 실험을 반복하면서 제게 의뢰한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나면 정말 뿌듯합니다.”
영국전자란 이름이 이제 국내 산업현장에 많이 알려져 다양한 산업용 CCTV 제작 의뢰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김배훈 대표는 10년 전부터 준비하고 기술축적에 노력한 결과가 오늘이 이르렀다고 말한다.
“지난 5년 동안 줄 잡아 70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특수 기술들이 사용되다 보니 진입장벽이 생각보다 높더라 구요. 특히 기술과 숙련도보다 공공기관에서 취득한 인증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애도 많이 먹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대부분의 인증은 취득했습니다만.”
영국전자 용인 공장에는 사무실로 들어가는 통로와 사무실 내벽 그리고 대표이사 집무실까지 수많은 인증서, 상장, 표창장 등이 당당하고 자랑스럽고 걸려있다. 투박하고 단조롭지만 그 어떤 인테리어 장식보다 돋보인다. 그중 2014년에 ‘대한민국 발명 특허 대상 대통령상’은 영국전자 모든 임·직원의 자랑이다. 대기업의 전유물이었던 대통령상을 중소기업이 기술력을 인정받아 수상한 첫 번째 사례라고 한다.
영국전자의 김배훈 대표는 2018년을 맞아 다시 신발끈을 매고 있다. 이제 적당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고 대내외적으로 명성도 얻었기 때문에 편히 쉬엄쉬엄 일을 해도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도전 목표가 생겼다고 말한다.
“지난 5년이 저에게는 무척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기술간 융합·복합에 눈을 뜨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동안은 ‘How’에 방점을 둔 경영을 해왔지만 ‘What’에 목표를 둔 길을 걸어야 한다고 결론에 이르렀죠. 즉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결론입니다.”
지금까지 주어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how) 할까를 고민했다면 앞으로는 시장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프론티어 정신으로 무장하고 ‘무엇을’(what)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실패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대표이사의 어깨는 무겁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이제 고민은 끝났다고 말하는 김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영국전자가 걸어가는 길은 항상 최초, 최고의 기록들을 만들고 싶고,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다.
CCTV를 포함한 영상이 필요한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AI까지 접목한 기술 발전 속도도 눈부시게 빠르다. ㈜영국전자는 2018년을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지사를 중심으로 한 대 중국 마케팅 전개와 미국, 유럽을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시장 개척을 올해부터 차근차근 진행할 생각이다. 2.3년 후의 회사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김배훈 대표의 말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전문 분야의 기술적 경쟁력으로 대기업 못지않은 단단한 중견기업의 탄생이 기대 된다.
* SPECIAL VISION : 극한의 생산 현장 에서 다양한 파장대역의 영상과 화상처리를 활용해 산업의 안전과 생산성에 반하는 문제점 을 해결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정승호 기자 saint09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