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아들과 나란히 밤길을 걸을 땐

이창기 作

(1959년~)

2815A38시로여는수욜





아들과 함께 나란히 밤길을 걷다가 기도원 앞 다리께서 서로 눈이 맞아 달처럼 씨익 웃는다. 너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안쓰럽다거나 어느 새 거칠어진 내 숨소리가 마음 쓰여서만은 아닐 게다. 아마 나란히 걷는 이 밤길이 언젠가 아스라이 멀어져갈 별빛과 이어져 있음을, 그리고 그 새벽에 차마 나누지 못할 서툰 작별의 말을 미리 웃음으로 삭히고 있다는 뜻일 게다. 아들과 나란히 밤길을 걸을 땐, 벙어리인 양, 서로 마주 보며, 많이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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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처럼 씨익 웃었을 뿐인데, 웃음 속에 이렇게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군요. 세상 많은 사람 중에 아버지와 아들로 만나, 함께 땀 흘려 밤길 걷다가, 아스라한 별빛이 될 것을 잘 알고 있군요. 만나서 기뻤다고, 함께 해서 든든하다고, 헤어질 것 슬프다고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그 모든 걸 눈빛의 온도만으로 고스란히 전하고 있군요. 아버지와 아들뿐이겠어요. 우리 모두 장구한 우주 역사 속 찰나 인연인걸요. 입안에 맴도는 서툰 자음과 모음 꺼낼 것도 없이 마주 보며 웃자고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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