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佛서 '독립운동 후원' 한인 37명 찾았다

일제치하 피해 파리 인근 정착

민족 정체성 지키며 단체 결성

십시일반 모은 돈 臨政에 보태

독립운동사 연구자 이장규씨

쉬프 외국인 거주명단서 확인

100년 전 프랑스 1차 세계대전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며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활동도 돕던 한인들이 살던 파리 인근 쉬프시의 주택가다. 100년 전 이들이 살던 지역에는 현재도 당시의 주택 몇 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연합뉴스100년 전 프랑스 1차 세계대전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며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활동도 돕던 한인들이 살던 파리 인근 쉬프시의 주택가다. 100년 전 이들이 살던 지역에는 현재도 당시의 주택 몇 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연합뉴스


100년 전 나라를 잃었어도 프랑스 파리 인근의 소도시에서 ‘한국’ 국적으로 한인 수십 명이 고된 삶을 이어가며 3·1운동 1주년 기념식도 갖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프랑스 파리7대학(디드로대) 한국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독립운동사 연구자 이장규씨는 파리에서 동쪽으로 200㎞ 떨어진 소도시 쉬프에서 100년 전 거주하던 한인들의 명단을 프랑스 지방정부 자료에서 확인했다고 27일(현지시간) 밝혔다.

이씨가 쉬프시를 관할하는 마른도청 자료실을 뒤져 최근 찾아낸 1920년 쉬프시청 외국인 명부에는 박춘화·박단봉·차병식 등 한인 37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프랑스 도착 일자, 직업 등 인적사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 치하에서 외국의 한국인들이 일본이나 중국 국적자로 활동한 것과 달리 이 명부에는 한인들의 국적이 한국인(Coreen)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들은 조국을 빼앗긴 채 러시아 연해주와 북해·영국을 거쳐 프랑스로 건너와 독일과 프랑스의 1차대전 격전지였던 베르됭 인근의 소도시 쉬프에 정착해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했다. 이씨는 “지금도 한인들이 살던 집이 몇 채 남아 있으며 현지의 시장이나 향토사 연구자들이 한인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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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논문 ‘프랑스 최초의 한인 단체 재법한국민회 연구’에 따르면 쉬프의 한인들은 당시 전쟁 폐허를 복구하는 고된 삶을 살면서도 1919년 11월 한인 단체 결성에 참여했다. 한인 노동자들은 또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활동을 돕는가 하면 유학생과 지식인 동포들에게 한국 역사와 지리·국어 등을 배우며 한민족으로의 정체성을 지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시 신문 ‘신한민보’에 따르면 1920년 3월1일 쉬프에 유럽 각지의 한인들을 초대해 3·1운동 1주년 기념 경축식을 열었고 이 기념식에는 한인 노동자 35명과 학생 10여명, 영국 런던에서 가족을 데리고 온 10여명, 파리위원부 인사들이 모였다.

이들은 파리위원부에 6개월간 6,000프랑의 거액을 기부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 프랑스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고려하면 한인들이 한 달 수입의 4분의1을 파리위원부에 기부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리 디드로대에서 한국 독립운동사를 강의한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한인 노동자들의 실체가 100년 만에 프랑스 기록으로 확인된 사례로 프랑스 최초의 한인 이주집단 연구에 중요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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