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캐스트의 브라이언 로버트 최고경영자(CEO)가 21세기폭스의 수장 루퍼트 머독에게 달갑지 않은 두 가지 옵션을 제시했다. 스카이 인수전에 뛰어들든지, 그게 싫으면 디즈니에 자산을 넘기기로 한 계획을 재고하든지.”
컴캐스트가 스카이 인수전에 참여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미 뉴욕타임스(NYT)는 스카이를 둘러싼 미디어 공룡들의 복잡해진 관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21세기폭스가 끝내 스카이를 품을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던 와중에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든 컴캐스트의 베팅이 상황을 전혀 다른 양상으로 몰아넣고 있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출현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한 전통 미디어그룹들이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 치열한 각축전을 편 결과다. 뉴스·영화 등 ‘한우물’만 파던 시대가 가고 통합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디어 공룡들의 생존을 위한 일전이 스카이를 둘러싸고 상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컴캐스트는 27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미국 최대 케이블TV 업체인 컴캐스트가 영국 위성방송 스카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주당 12.5파운드에 스카이 지분 50% 이상을 인수하고 총인수금액 220억파운드(약 33조1,236억원)는 전액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컴캐스트가 제시한 인수가는 미국 언론재벌인 머독이 이끄는 폭스가 제시한 주당 10.75파운드보다 16% 높다.
컴캐스트는 스카이 고객 확보로 경쟁사인 타임워너를 따돌리고 영국으로 시장을 넓혀가기 위해 이번 인수전에 참여했다. 폭스 자산 인수전에서 디즈니에 패한 컴캐스트가 이번에는 스카이를 놓고 폭스와의 대전을 예고한 것이다. 컴캐스트는 지난 1963년 선대 회장 때부터 꾸준히 미디어사들을 인수해 성공적으로 키워낸 점을 강조하며 폭스를 위협하고 있다. 로버트 CEO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유니버설스튜디오, NBC 유니버설테마파크는 2011년 우리가 인수했던 당시보다 많은 수익을 해내고 있다”며 “영국 규제당국의 인수 승인을 받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얻기 위해 1년 넘게 공을 들여온 폭스 측은 컴캐스트의 도전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폭스는 2016년 12월 스카이 지분 61%를 117억파운드에 사들이는 계획을 밝혔다. 기존에 보유한 지분 39%를 더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한다는 구상이었지만 규제당국이 머독의 언론에 대한 영향력 비대화를 우려해 승인을 보류해왔다. 2011년 스카이 인수를 추진했다가 영국 계열 언론사의 전화 해킹 스캔들로 계획을 접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폭스는 ‘독립성 보장’ 등 당국의 요구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하며 필사의 각오를 다졌다. 이러한 노력으로 최근 영국 언론은 결국 폭스가 스카이를 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예상 밖이던 컴캐스트의 등장으로 폭스의 인수계획이 틀어질 위기에 놓이면서 폭스 자산을 인수하려던 월트디즈니의 구상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디즈니는 지난해 말 스카이 지분을 포함한 21세기폭스의 영화·TV 부문 등을 524억달러에 인수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후 디즈니는 포트폴리오 다변화 효과를 노리고 폭스와 스카이 간 거래성사만을 기다려왔다.
스카이를 둘러싼 미디어 공룡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는 결국 ‘쩐의 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수가가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 상황에서 컴캐스트와 폭스·디즈니 연합은 60%의 중립 성향 주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격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씨티은행에 따르면 영국 프리미어리그 중계권 가치를 고려할 때 스카이의 적정 주당 가격은 13파운드로 평가된다. FT는 “폭스와 디즈니는 컴캐스트 인수 노력을 저지하기 위한 추가 지분매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폭스가 더 높은 액수를 써내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며 “추가 발생 비용을 디즈니가 분담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밥 아이거 디즈니 CEO가 스카이를 ‘왕관 보석’으로 표현할 만큼 애착을 갖고 있다”며 “디즈니가 컴캐스트의 도전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으며 인수전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