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STX·성동조선 회생 가닥]'정치적 판단'으로 살아났지만...성동조선, 껍데기만 남을수도

글로벌 업황 회복세 너무 더디고

中조선사 선종과 겹쳐 일감 부족

채권단은 대규모 자금 투입 꺼려

기술력 보유한 대우조선때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 불가피할듯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첫 산업현장 방문지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찾자 중견 조선사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가장 효자 산업이었고 외환위기를 이겨내게 한 조선해양 산업이 다시 우뚝 설 것이라 확신한다”며 조선업황에 대한 회복 의지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불과 세 달 전 내려진 두 회사의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크다는 ‘사형 선고’에서 확 달라진 기류였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서는 “복음처럼 들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조선 업계에서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가 최근 몇 년간 진행된 조선업 불황으로 초토화된 큰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의 성난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입장을 바꿨다는 해석이 나왔다.


낌새는 이전부터 감지됐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금융적 측면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두루 고려하겠다며 두 회사에 대해 외부 컨설팅을 재차 의뢰했다. 중소형 조선사 살리기에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 나올 만했다. 실제 정부는 조만간 STX조선과 성동조선을 모두 회생시키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생 가닥 잡혔지만 고강도 구조조정 불가피=정부는 STX조선과 성동조선의 회생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하지만 대대적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 상태로는 중견 조선사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황 회복세가 더디다. 지난해부터 조선 경기가 조금씩 반등하고 있기는 하지만 10년 불황의 기저효과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 지난해 선박 발주량은 2010~2015년 연평균 선박 발주량(4,262만CGT)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많지 않은 물량을 따내기 위해 중국 조선사와의 출혈경쟁도 불가피하다. 업계는 국내 중견 조선사가 만드는 중형 선박이 중국 업체들의 선종과 겹쳐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는 선박 품질에서 다소 앞선 것으로 평가받지만 중국 조선사는 저렴한 인건비와 정부 지원을 무기로 품질 열세를 상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조선 업계 관계자는 “선박을 수주해도 대부분 한자릿수대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며 “업황이 예년에 비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털어놓았다.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친환경 선박 부문에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보유했다고 평가받던 대우조선을 살려낼 때보다 지원 전제조건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자금을 직접 투입해야 하는 채권단 측에서는 이후 배임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어 회생에 부정적 입장을 거듭 밝히는 상황이다. 정부가 두 회사를 살리더라도 고강도 자구노력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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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자본 없는 성동 껍데기만 남길 수도=STX조선만 해도 인력을 현재의 30%(300명) 이상 줄여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선박 건조 작업을 위한 직영 인력을 대폭 줄이고 불확실한 업황을 견딜 체질개선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형 유조선과 가스 운반선 외 사업부를 대폭 정리하는 방침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동조선의 앞길은 더 가시밭길이다. STX조선(16척 보유)과 달리 당장 손에 잡히는 일감이 없다. 성동조선은 지난해 원유운반선 5척을 수주했으나 선주사 측이 성동조선의 회생을 확신하지 못해 건조를 유보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일단 살린다고 하더라도 일감을 새로 따내기 전까지 매달 수십억원의 고정비가 필요하다. 보유현금이 바닥난 성동조선에 당장 자금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해 법정관리를 졸업하며 부채를 털고 나온 STX조선과 반대로 성동조선은 당장 올해 갚아야 할 금융비용(채무상환액·이자)만 597억원, 오는 2020년까지 총 2,000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채권단이 2019년까지 금융비용 가운데 유예한 금액을 더하면 2조6,000억원까지 불어난다. 선박을 수주해도 이익을 내기 어려운 현 상황이 급반전되지 않는 한 성동조선이 사실상 갚기 어려운 금액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중형 탱커 등 기존 사업부를 아예 정리하고 선박 개조·수리 조선소나 선박 일부를 제조하는 블록공장으로 전환하는 내용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800명에 이르는 성동조선 생산직 근로자 대부분이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선박 건조에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수리조선소와 블록공장은 수개월이면 작업이 끝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리조선소나 블록공장으로 전환하더라도 성동조선의 장기 생존에 의문부호가 붙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게 문제다. 블록공장 역시 대형 조선사가 물량을 밖으로 내줘야 일감을 받을 수 있는데 일감 부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조선사가 외부에 물량을 넘길 리 만무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 업계 관계자는 “당장 파장을 고려해 일단 살려는 두겠다는 것”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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