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불어온 악재에 코스피·코스닥시장의 조정이 깊어지며 증시 주변 자금들의 ‘눈치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고수익을 노리기보다는 대기성 자금인 머니마켓펀드(MMF)에서 방망이를 짧게 잡고 시장을 관망하는 추세다. 시장 전문가들은 무역전쟁이 글로벌 환율전쟁으로 확전될 경우 증시에서 자금이탈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5일 코스피시장은 금리상승과 무역전쟁 등 연이은 미국발 악재에 1% 넘게 하락하며 2,380선 아래로 밀렸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7.10포인트(1.13%) 떨어진 2,375.06으로 장을 마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폭탄’ 결정 이후 나흘 동안 82.59포인트나 하락했다. 기관이 사흘 연속 7,513억원을 순매도했고 삼성전자는 1.78% 하락하며 226만원으로 주저앉았다. 코스닥도 1.77% 떨어진 845로 마감했다.
주식시장이 힘을 잃으며 증시 주변 자금은 빠르게 단기화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연초 이후 국내 128개 MMF에는 약 21조8,146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MMF는 주로 국공채 등 안정적인 채권에 단기 투자해 이자 수익을 낸다. 채권형펀드에 비해 효율적으로 시장 상황에 대비할 수 있어 주로 대기성 자금이 투입된다. 지난해 증시가 호황일 때는 MMF에서는 자금이 10조원 이상 빠져나갔지만 최근 3~6개월간 조정 장세를 진입하며 자금이 다시 유입됐다. 반면 국내 채권형펀드는 연초 이후 388억원의 자금이 유입됐으며 3개월간은 1조원이 유출됐다.
MMF는 주로 투자자들이 시장을 관망할 때 자금이 몰린다. 짧은 기간에 안정적으로 투자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MMF의 수익률은 최근 1년간 1.33%, 연초 이후에는 0.25%에 불과하다. 최근 미국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만기가 비교적 짧은 상품에 투자하는 MMF를 통해 자금을 유치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공격적 성향을 가진 투자자들 역시 주식형펀드보다는 목표전환형 상품으로 자금을 움직였다. 연초 이후 상장지수펀드(ETF)나 연금형을 제외한 대부분 테마형 펀드에서 자금이 유출됐지만 일정 수익을 달성하면 채권형으로 전환되는 목표전환형 펀드에서는 자금이 1,187억원 유입됐다. 증시 주변 자금들이 단기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변동성을 키우는 주요 요인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실적발표 등이다. 소재용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부채 부담이 높아지고 자산가격이 상승하면서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이 시장 위험 요인으로 부상했다”며 “글로벌 통화정책 향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연준의 통화 정상화 행보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격조정이 일단락한 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실적 발표 등을 점검하며 투자할 것을 권했다. 특히 채권보다는 주식이 유리하며 주식 내에서도 신흥국·선진국보다 국내를 중심으로 접근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소 연구원은 “미국 경기와 기업 실적이 견고하다는 점에서 국내외 주식에 대해서는 중립 이상의 매력도를 유지하지만 불안정한 외부 환경으로 신흥국과 선진국 간 차별화가 나타날 수 있다”며 “신흥국·선진국에 비해서는 국내 시장 투자가 유리하지만 최근 국내 기업 이익 추정치가 하향 조정되고 있어 반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에 취약한 채권의 투자 매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다만 올해 금리 인상 속도가 가시화하는 3월에는 선진국이나 국내 국채보다는 국내외 주식이나 신흥국 채권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전략이 유리하다. 브라질·러시아 등 신흥국 국채는 특히 관심이 높은 투자처다. 연초 이후 해외 채권형펀드에서는 신흥국 채권만 842억원이 순유입됐다. 이 기간 채권형펀드 중 자금이 들어온 지역은 신흥국 채권형뿐이다. 주요 신흥국이 최근 들어 꾸준히 기준 금리를 내리면서 해당 국가의 채권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진 덕분이다.
신환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채권 전반이 약세를 보이지만 대외환경 변화에 대한 맷집이 높고 구조개혁이 진행되는 신흥국 로컬 채권은 유망하다”며 “중국·체코 등은 금리상승과 환율 약세 등으로 당분간 투자 매력이 높지 않지만 러시아·멕시코·브라질 등은 여전히 유망 채권 투자 국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