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트럼프發 무역전쟁]'아웃리치' 작전 번번이 수포로...韓철강 '돌이킬수 없는' 피해

美, 대형강관에 또 덤핑 판정

2년전 강판 고율관세 부과이후

정부 당국자 수십번 美로 날아가

로스 상무 등 고위급 인사 면담

회유 작업 나섰지만 결국 실패

전문가 "제재 낌새 보일 때부터

강력대응했다면 피해 줄였을 것"



“백방으로 뛰어다녔는데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미국 수출 목표치를 낮춰 잡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미국의 통상공세에 맞대응하기 위해 철강 업체 임원들을 소집한 자리. 정부는 미국이 결국 초고강도 통상제재인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으로 기울었다고 털어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수십 번 미국으로 날아가 윌버 로스 상무장관 등 고위급 인사를 만나 회유작전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참담한 고백이었다.


미국이 한국산 철강재(대형구경 강관)에 다시 한 번 ‘덤핑 낙인’을 찍으면서 한국 정부의 ‘아웃리치(외부 물밑접촉)’ 작전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첫 실패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지난 2016년 ‘불리한 가용정보(AFA·피소업체의 조사 협조가 미진할 경우 징벌적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를 남용해 포스코산 열연강판에 고율의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으로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했다. 미국이 이를 꼬투리 잡아 열연강판이 들어간 다른 제품에도 관세 폭탄을 던질 수 있는 만큼 국제기구에 제소해 부조리함을 당당히 못 박아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강공보다는 우회작전을 펼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탄핵 정국으로 제소 여부를 결정할 컨트롤타워가 실종된데다 안보 측면에서 긴밀하게 얽혀 있는 미국의 보복을 두려워해서다. 결과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만 불렀다. 미국은 이후 한국의 거듭된 만류와 설득에도 포스코산 열연강판을 썼다며 다른 철강재에도 덤핑 딱지를 붙여댔다. 넥스틸 등은 포스코산 열연제품을 썼다며 60%대 관세를 맞아 미국으로의 공장 이전까지 검토하는 상황이다.


급기야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 근거로 그간의 반덤핑 판정을 거론한 상태다. 미국은 반덤핑 관세가 매겨진 철강재를 보면 한국 철강 업체가 덤핑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덤핑 공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자국 철강 업계를 보호할 초고강도 제재를 발동해야 한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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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열연강판에 붙은 불이 2년 사이 한국 철강 업체로 들불처럼 번졌으나 정부는 아웃리치 작전을 고수했다. 지난해 12월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으로 기울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를 현지로 파견해 담판을 벌이는 쪽을 택했다. 지난달에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파견해 한국산 철강이 미국 철강 산업에 위협이 되지 않고 현지투자를 통해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답은 싸늘했다. 미국은 5일 한국산 대형구경 강관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한국산 철강으로 자국 업체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한국 철강이 결코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김 본부장의 읍소를 완전히 외면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아웃리치만으로 효과를 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크다. 한국 철강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트럼프 행정부를 말로만 회유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철강재를 수백%대 관세를 매겨 쫓아낸 자리에 한국이 들어섰다고 확신한다. 한국이 중국의 최대 철강 수입국이라 중국산 물량을 수출한다는 혐의까지 덮어씌운 상태다. 실제 2011년 113만톤을 미국에 수출했던 중국은 지난해 78만톤으로 수출액이 31% 줄어들며 11위로 밀려났다. 이 기간에 한국은 수출물량이 연간 257만톤에서 365만톤으로 42%나 급증했다. 미국이 “중국산을 몰아내니 한국산이 득세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한 통상전문가는 “통상정책과 안보 문제를 분리하지 않고 한 맥락에서 풀어나가려 했던 정부 의도가 결국 패착”이었다며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제재 낌새가 보일 때부터 강력하게 대응했다면 지금처럼 피해가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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