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대북특사단이 지난 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 및 군사적 긴장 완화 방안 등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북미 대화의 여건을 마련하는 작업에 한층 탄력이 붙게 됐다. 아울러 양측이 남북 정상회담 관련 등의 내용에도 합의하면서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이제는 김 위원장이 우리 측과 나눈 비핵화 논의의 수준이 미국이 요구하는 눈높이에 맞을지 여부가 관건으로 남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에 호응해 대북 대화의 문을 연다면 ‘북한의 핵 동결 및 불능화 →한반도 항구적 평화 구축’에 이르는 2단계 비핵화 로드맵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수석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5일 방북에 앞서 언론에 밝힌 일성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확고한 뜻과 의지를 분명히 전달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당일 특사단의 김 위원장 면담 결과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6일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실망스럽지 않은 결과”라고 전했다. 비핵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가 김 위원장 측에 제대로 전달됐고 어느 정도 북측의 호응을 받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6일 청와대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나란히 공개한 대북특사와 김 위원장 간 전날 면담 사진 중 일부에는 “또 한 번의 결단으로 이 고비를 극복 기대”라는 내용 등이 적힌 정 특사의 수첩 내용이 찍혀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오는 4월로 예정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앞두고 다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기 전에 북미 대화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대담한 결단을 내리는 문제를 협의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과정에서 특사단은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다면 조만간 우리 정부 차원에서 미국을 설득해 북미 대화를 적극적으로 연결할 것이라고 설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북한의 핵동결·폐기 추진 시 그 이행 수준에 따라 상응하는 대북제재의 완화 및 해제를 추진하고 종국적으로는 남북 간 경제협력 재개 등을 실행할 수 있음을 설득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이에 호응해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1단계 조치로 핵·미사일 개발 잠정 유예의 메시지를 천명했을지 여부가 최대 관건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이 대북특사단과 2단계 비핵화 방안에 대해 어느 정도 접점을 찾았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사단과 김 위원장 간 5일 면담의 또 다른 키워드는 남북 정상회담을 의미하는 ‘수뇌 상봉’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실무적 조치들을 속히 취하는 것에 대해 ‘강령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조건만 맞는다면 남북 정상 간 만남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이르면 상반기나 오는 8월 즈음에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은 대북특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며 북미 대화 등을 연결시켜 비핵화와 한반도의 안정을 가져오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는 8일부터 2박 3일간 일정으로 고위급 당국자를 방미시켜 이번 대북특사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트럼프 대통령 측 반응을 살피며 남북 정상회담의 추진 속도와 의제 설정 범위 등을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으로서는 우리 정부와의 합의만으로는 자신을 옥죄어온 초고강도의 국제 제재에서 벗어날 수 없어 미국 등의 호응 없는 남북 대화는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