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이중스파이

0715A39 만파아




냉전이 한창이던 1959년 스위스 주재 미국대사관에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영국 비밀정보국에 암호명 ‘다이아몬드’라는 이중스파이가 있다는 첩보였다. 곧바로 색출 작업이 벌어졌고 범인이 서베를린 정보부 요원인 조지 블레이크라는 게 드러났다. 하지만 서방 정보망은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은 후였다. 공산권 내 서방 스파이 400여명의 명단이 흘러나갔고 이 중 영국 요원 42명은 목숨을 잃었다. 소련 전화회선 도청을 위한 ‘베를린 터널 작전’이 시작 단계에 노출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블레이크는 4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탈옥 후 소련에서 레닌 훈장과 붉은 깃발 훈장을 받았다.


이중스파이가 적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필요한 고급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내상을 준다. 1940년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독일에 거짓 포섭된 독일계 미국인 윌리엄 세볼드를 이용해 독일 간첩 33명을 체포한 것이나 1980년대 소련에 KGB 내 이중간첩 명단을 팔아넘긴 미 중앙정보부(CIA) 간부 올드리치 에임스가 그 예다. 전쟁의 흐름을 바꾼 적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베이비(Baby)’라는 암호명의 프랑스 여성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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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스파이가 서방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청나라에서 조선어 통역관을 하던 ‘대통아역(大通衙譯)’들은 대부분 병자호란 때 끌려간 포로였다. 이들 중 일부가 조선을 위해 일했다. 조선 후기 국가 최고 회의기관의 활동 내용을 담은 ‘비변사등록’에 따르면 효종은 통역관 김삼달을 통해 청과 남명(南明)의 전쟁 현황에 대한 정보를 모았을 뿐 아니라 나선정벌 때는 조선군의 길잡이 역할도 맡겼다. 사실상 조선이 청에 심은 이중스파이인 셈이다.

영국 정부에 러시아 정보기관 인물들의 명단과 기밀을 넘긴 전직 러시아 첩보원 세르게이 스크리팔이 독극물에 노출돼 위독하다는 소식이다. 일각에서는 2006년 전직 러시아 연방보안국 요원으로 있다 영국으로 망명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독살 사건과 유사하다며 러시아 암살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화려한 일생을 보장받을지 모르지만 남과 나를 모두 속이는 두 얼굴의 삶은 언제나 위태롭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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