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개봉한 영화 ‘괴물들’(김백준 감독, (주)K 프로덕션·버티고필름·플로우식스 제작)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하는 소년과 원하는 건 어떻게든 가져야 하는 소년, 그리고 그 두 소년 사이에 있는 천진난만한 소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10대들의 권력과 폭력의 비극을 그린 청춘느와르다.
‘괴물들’은 자신을 괴롭히던 같은 반 급우에게 제초제 음료수를 먹여 복수하려고 했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배우 이원근 /사진=리틀빅픽처스부산-롯데 창조영화펀드, 영화진흥위원회 국제공동 지원작으로 선정되며 기획 단계부터 주목 받은 ‘괴물들’은 앞서 ‘이웃사람’을 연출했던 김휘 감독이 제작했다. 배우 이원근, 이이경, 박규영, 오승훈 등이 제 몫을 해내며 완성도를 높였다.
‘괴물들’은 평범해 보이는 고등학생 ‘재영’의 일상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교폭력에 대하여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오랜 시간 동안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며 경계에 놓인 인물들을 조명하는 것에 집중해온 김백준 감독이 5년 동안 준비한 작품이다. 김백준 감독은 “사회적 안전망에서 벗어난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고 연출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영화의 미덕은 약자를 대상으로 발현되는 폭력의 속성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폭력의 굴레를 조명한 점. 가해자로 고통 받던 소년 ‘재영’이 살아남기 위해 충격적인 선택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관객을 충격과 혼돈으로 몰아넣는다.
끊을 수 없는 폭력의 사슬에 묶인 순수한 청춘이 변해갈 수밖에 없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배우 이원근을 만났다.
Q. 학교폭력의 피해자이자, 영화 제목인 ‘괴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 ‘재영’ 역을 맡았다.
A. 가해자 인 양훈(이이경)도 그렇지만 재영이란 인물 자체도 나쁜 아이로 볼 수 있다.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때리거나 찌를 순 없어도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인물이다. 현실에 있었다면 제일 나쁜 인물로 여겨질 수도 있을 듯 하다. 자칫 잘못하면, 폭력을 미화하는 것처럼 보일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재영이의 행동에 의해서 타당성이 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Q. ‘현실에선 나쁜 놈’이란 말이 재영이가 가해자가 되는 과정에 있는 인물이란 의미인가?
A. 감독님이 원하셨던 건, 연약해 보이는 인물이었는데, 충동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모습이다. 10대들이 충동적이지 않나.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얼마나 잘못된 건지 모르고 앞만 보고 간다. 재영이도 그런 것 같다. 난 이 나쁜 상황을 깨기 위해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길을 하나 밖에 못 보는 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 바로 재영이다.
Q. 재영이란 인물을 만들기 위해 김백준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듯 하다.
A. 부산에서 같은 숙소에서 머물면서 감독님이랑 진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같은 빨래방. 또 밥집을 이용해서 어디를 가더라도 다 마주하게 돼 있었던 시간이다. 빨래 돌리는 것 기다리면서, 밥 먹으로 가서도 계속 감독이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연결되서 이 인물이 폭발하기까지의 디테일이 중요했다.
감독님 스타일이 자기를 확고히 믿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모니터를 안 보여주셨다. 물론 모니터를 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촬영 일정이 빡빡하기도 했다. 저 뿐 아니라 모든 분들이 다 고생했던 현장이었다. 정말 이건 있을 수도 없을 만큼 너무 힘들었었다.
Q. 극중 ‘재영’이 처하게 되는 폭력의 극한 상황과 그가 폭력 앞에서 느끼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흡인력이 높다. 하지만 재영이가 선택 할 수 있었던 자구책이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있다.
A. 양훈이에게 예리를 만나게 해주는 재영이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선택이다. 현실적인 부분이라 더 마음이 아팠다. 왜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물어보기도 하시는데, 선생님에게 말하거나, 아빠에게 말한다고 해서 ‘누가 내 말을 들어줄까?’란 생각을 먼저 했을 것 같다. 저도 그랬으니까. 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힘든 걸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Q. 이 영화가 10대 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A. 재영이 사건은 너무 정도가 세고 힘든데, 10대들에겐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올바른 길로 가야 하는데, 그 길에서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었다면, 다른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말 한마디 건네주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나 역시 왜 못했을까? 왜 안 하고 있었을까?를 돌아보게 됐다.
Q. 혹시 원근씨가 10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하는 사소한 행동이 있을까?
A.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동네 이웃 친구들을 만나면 한번씩 말을 건다. 고등학생은 말걸기엔 조금 두렵기도 하더라(웃음) 예전과는 다르게 내가 먼저 다가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을 걸어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되게 말이 많다는 걸 알게된다. 소통할 사람이 필요한 거다. (원근씨가 배우 인지는 모르는 것 같나?)아이들이 날 동네 백수 형으로 알 수도 있다. 낮에도 추리닝 입고 자주 돌아다니니까. 저 형처럼 되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 할 지도 모르겠다. 하하.
Q. 재영이란 인물이 영화의 제목인 ‘괴물들’의 함축적인 의미를 많이 보여준다.
A. 괴물=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볼 수 있지만, 재영 역시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가고 있다. 폭력을 행사하던 친구가 아닌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이제는 괴물이 된 건 맞죠..그 이후엔 다시 폭력을 행사할까? 그 부분에 대해선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그가 폭력적이 되게 불을 지피는 건 주위인물들이다. 나로 인해서 사건이 커졌다는 걸 실감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아직은 그 경계에 있었던 것 같다.
Q. 호흡을 맞춘 이이경 배우는 원근씨에게 폭력을 행사해야 해서 힘들었다고 하더라. 역할적으로 맞는 게 더 심적인 고통은 덜 할까?
A.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제가 이경이 형 역할이 돼보지 못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형이 항상 고민을 많이 했던 게 느껴졌다. 내가 (대본에 나온대로)맞을 걸 알고 지레 겁 먹기도 하니까 형도 미안해하고 고민이 많았다. 그런 점에선 맞는 게 낫지 않을까. 해 봤으니 속 시원히 맞자 주의다. 다음에도 맞는 역할이 마음 편할 것 같다.
Q. 청소년들이 봤음 하는 작품인데,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A. 학생들이 봐야하는데, 모방성 때문에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은 것 같다. 단순히 ‘학교 폭력은 자행되어선 안된다’가 아닌, 학교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는 영화다. 영화적인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관객들이 좋게 봐주시면 좋겠다. 성인들이 우리 영화를 보면서 내 학창시절은 어땠는지 생각 할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10대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더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