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개발 공기업에서 27년째 현장에서 뛰고 있는 A 부장은 신입 때 선배들로부터 1981년의 영광에 대한 무용담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석유파동으로 전 세계가 시름에 잠겼던 당시 민간기업인 코데코에너지가 인도네시아 서마두라에서 유전개발 소식을 알려왔던 이야기다. 200만배럴짜리 소규모 유전이지만 민간기업 최초의 유전개발이어서 업계에 화제가 됐다.
한국은 지난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을 겪고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1978년 해외자원개발촉진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한국석유공사가 설립됐다. 1990년대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1984년 석유공사가 10억배럴 규모의 자이언트급 예멘 마리브 유전을 발견하면서 민간업체들의 참여도 활발해졌다. 1990년대 베트남 5-1·11-2광구 사업에서는 외국 자원개발 회사가 주도하는 사업에 출자하는 단순투자 단계를 벗어나 자체 기술력으로 탐사 단계부터 주도하는 등 개발 노하우를 쌓아갔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다. A 부장은 “1981년 인도네시아 서마두라 유전개발 소식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이후 30년간 꾸준한 해외자원개발로 상당한 역량을 쌓았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해외자원개발이 ‘적폐’로 몰리면서 신규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대박’은 많지 않았지만 나름의 역량을 쌓아가던 자원개발 업계는 현재 ‘공공의 적’으로 전락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해외자원개발의 드라이브를 건 게 오히려 독이 됐다. 해외자원개발 업체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화를 추진한 것이 무리수였다. 기나긴 인내심을 요하는 자체 개발을 건너뛰고 M&A를 통해 단숨에 성과를 거두려는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드라이브가 걸리다 보니 공기업들은 투자계획과 재무전망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예측했고 이는 부실로 이어졌다. 2009년 석유공사가 4조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인수한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은 누적적자만 4조원에 달한다. 3조8,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영국의 다나 역시 사업성 검토 당시보다 적은 생산량과 유가 하락으로 3년째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광물자원공사가 1조4,000억원을 투자한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사업 역시 건설과 생산 지연으로 투자비가 증가하고 니켈 가격이 하락하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자원개발 비리가 줄줄이 터지면서 ‘해외자원개발=적폐’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국내로 수입되는 전체 광물자원 수입량 대비 해외자원개발을 통해 확보한 광물자원의 양을 의미하는 ‘자주개발률(옛 자원개발률)’은 경쟁국인 일본의 절반에 불과하다. 석유·가스 자주개발률(2014년 기준)은 14.4%로 일본(24.7%)에 뒤져 있고 유연탄·동·철광 등 전략 광물 자주개발률은 일본이 60%인 데 반해 한국은 32.1%에 머물러 있다.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 중국의 시노펙그룹(3위), 중국석유(CNPC·4위) 네덜란드와 영국의 합작 정유회사 로열더치셸(7위), 미국의 엑손모빌(10위), 영국의 BP(12위) 등 해외 에너지 기업들이 다수 포진해 있지만 한국의 자원공기업과 민간기업은 명함조차 내밀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런 참담한 결과는 결국 투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해외자원개발 투자액은 934억8,400만달러(2014년 기준)로 한국(67억9,300만달러)보다 13.7배 많다. 중국의 투자 규모도 712억1,000만달러에 달한다. 정부 예산 역시 일본은 한국에 비해 6배 많고 정책금융 지원 규모도 10배 크다. 최근 들어 이 격차는 더 벌어졌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자원개발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정책 리스크’를 꼽는다. 10년 이상 장기투자가 필요한 자원개발은 시류에 휘둘리지 않는 우직한 정책추진이 필수적인데 한국은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자원의 안정적 확보’라는 목표하에 일관된 투자를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 시노펙은 유가 하락 등으로 수익률이 크게 감소하면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자원 포트폴리오를 재배치하는 융통성도 발휘한다.
자원개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자원 확보를 위한 투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며 “자원개발 공기업들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정부의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통적 자원인 가스·석유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리튬·코발트 등의 확보를 위한 투자를 대거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코발트의 경우 중국과 스위스의 소수 기업이 유통을 독점하는 등 글로벌 쟁탈전의 막이 올랐다. 최선규 고려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배터리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정착 그 원료가 되는 코발트·리튬 등은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격이 오를 때만 광물을 확보하려고 하지 말고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자원개발 계획을 수립해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