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지도자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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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의 일등공신으로 세조에서 예종·성종에 이르기까지 세 명의 왕을 모시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한명회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은 자만심이 만들어낸 거짓말 때문이다. 성종 12년, 경치가 빼어난 정자 ‘압구정’에서 연회를 열어달라는 명나라 사신의 청을 받은 성종은 한명회에게 이를 부탁했다. 하지만 정자를 워낙 아낀 한명회는 자신의 정자가 좁다는 핑계로 이를 거절하다 왕실의 천막을 내주면 연회를 열겠다고 제안했다. 결국 성종은 다른 장소에서 연회를 열었지만 이마저도 한명회는 “처가 아파서 못 간다”는 거짓 핑계로 불참하고 따로 연회를 열었다. 이에 격노한 성종은 한명회를 파직하고 압구정도 허물어버렸다. 한명회의 몰락이 이 거짓말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의 처신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사회 지도층의 거짓말에 관해 서구 사회는 더 엄격하다. 거짓말에 대한 대가는 가혹할 정도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불법 도청과 백악관의 관계를 부인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개입돼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그는 결국 2년 후 미국 대통령 역사상 첫 중도 퇴진의 불명예를 겪었다.


때로는 대의를 위한 지도자의 거짓말도 있다. 희대의 간웅으로 평가받는 조조는 길을 잃은 병사들이 갈증에 지쳐 있을 때 “저 산을 넘으면 큰 매화나무 숲이 있다”고 외치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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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집권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사학재단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재무성이 특혜를 시사하는 문구와 매각 과정에 개입한 관련자 명단에서 아베 총리의 부인 이름을 삭제하는 등 문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총리 퇴진 요구로까지 확산하는 형국이다. 지난 12일에는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사태는 좀처럼 수습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자니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지도자의 핵심가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가운데 우리 사회가 지도층에 요구하는 최고의 덕목은 ‘신(信)’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두환 논설위원

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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