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암호화폐 거래량은 전 세계의 30% 규모인 데 비해 채굴량과 노드 수는 3% 미만이다. 시장의 열풍에 비해 실제 산업기반은 취약하다.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은 화폐를 넘어 무역·유통 등 기존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블록체인에 대한 기술적 논의를 넘어 사회 각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해야 할 때가 됐다는 의미다.
블록체인은 신뢰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 활용 가능하다. 그 중 화폐에 연동된 바우처(상품권)는 블록체인 기술의 제도권화에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사회적 편익은 매우 높다. 블록체인 바우처 도입을 통한 정책금융의 투명화 문제를 검토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의 핵심이 되는 기술적 문제는 ‘비잔틴 장군의 패러독스’로 불리는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합의 기술이다. 불특정 참여자들의 분산합의 없이 관리주체가 있는 사설(private) 블록체인은 이런 기술적 어려움이 없다. 블록체인 바우처는 상품권처럼 법정화폐인 원화와 1대1 연동구조를 가지고 발행기관이 책임관리를 한다. 분산원장 혹은 분산 데이터베이스의 성격을 갖는 사설 블록체인으로서의 바우처는 운용 투명성과 관리 효율성이 보장된다. 기술적으로도 기존 기술을 활용해 쉽게 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바우처의 도입 필요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자금과 150조원 규모의 복지예산 문제 등은 관리와 비용의 패러독스 관계다. 관리를 강화하면 오남용은 줄일 수 있으나 비용이 증가하고 수혜자들의 불만이 늘어난다. 블록체인 바우처는 투명성을 높이면서 비용을 줄이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정책자금 지원현장에 가보자. 모든 국가 세금의 투입은 사후 감사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아주 적은 회식비까지도 영수증으로 증빙되고 관리돼야 한다. 심지어는 반경 4㎞를 넘는 회식비 처리를 걸러내는 엄청난 노력도 투입된다. 보고서류도 엄청나게 많다. 감사에서 한번 지적되면 개연성이 있는 다른 분야에 대한 관리도 강화된다. 관리하는 공공기관도 힘들고 관리받는 기업도 짜증이 난다. 그래서 많은 벤처기업은 정책과제를 한번 해보고는 다시 안 한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제도의 허점을 노려 인건비 지급 후 회수하거나 장비를 사고 반품하는 형태로 비자금을 챙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공과 민간의 불신은 증폭된다.
4차 산업혁명의 양대기술 중 하나인 블록체인이 구원투수다. 정책자금 문제의 본질은 ‘돈에 꼬리표’가 없다는 점이다. 사설 블록체인 바우처는 분산원장에 의해 모든 거래 과정에 투명하게 꼬리표가 붙어 있다. 거래 과정에서 공공과 민간의 공동원장에 실시간으로 타임스탬프가 찍혀 기록된다. 사후조작이 불가능한 체인 구조가 된다. 모든 거래는 비디오 녹화처럼 항상 되돌려볼 수 있다. 투명성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
이어 관리비용 문제도 동시에 해결된다. 기업은 기록된 모든 거래를 통해 자동으로 회계장부 작성이 가능해진다. 제도 개선이 약간 필요하지만 별도의 영수증 부착 작업도 사라진다. 우수 벤처기업들이 국책과제에 다시 뛰어들 여건이 조성된다. 중간관리 기관들도 야근에서 해방돼 주40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 정산 시즌에 몰리는 살인적인 업무량이 사라진다. 모든 정책자금의 사용이 분산원장에 시간대별로 투명하게 기록돼 있다. 언제든지 용도에 따른 통계분석이 가능해진다. 또 감사기관들은 지루한 영수증 대조 업무에서 벗어나 감사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공공과 민간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개방정부 가이드라인을 통해 모든 정부의 지출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책자금은 원초적으로 투명해야 한다.
여기에 요구되는 기술은 하이퍼레저(HyperLedger) 등의 분산원장 기술과 QR 코드 연동거래 앱 정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