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팩트는 의심하고 사람은 믿어줘라

연세대 철학과 교수

<69> 진실을 찾는 방법

의심이 진리 찾는 과정이지만

대인관계서 무작정 불신 안돼

사람 쓰기 전엔 꼼꼼히 따지되

일단 일 맡겼다면 신뢰해야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불확실성에 직면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모습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불확실성을 다 제거하고 불변하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철학자는 가변적 현상에 너머에 있는 절대 진리에 늘 관심이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의심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보는 것이다. 그래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것을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믿으면 된다. 내가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는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 나는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어떤 악마가 있어 나를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것을 의심해보면 의심이 갈 수 있다.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사실 의심 가능한 것들이다.

‘1+1=2’라는 수학적 진리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1+1=3’인데 내가 2라고 착각하도록 악마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면 이 또한 의심할 수 있는 노릇이다. 악마만이 아니라 실제로 3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수학적 진리가 아니라 다른 뜻으로 하는 것이겠지만. 감각적 인상이든 이성적 판단이든 의심하려고 달려들면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 철학자들은 항상 메타적 사고를 한다. 의심을 의심하면 의심을 안 하는 것이 된다. 다른 것은 다 악마에 의해 속기도 하고 의심해볼 수도 있지만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다. 그런데 의심한다는 것은 바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유명한 명제가 탄생했다. 바로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업적이다.

1715A27 철학


진실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과학자들이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이것이다. 과학자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것을 다 의심해본다. 의심이 가는 것은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이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진지한 자세다. 그렇지만 사람에 대한 의심은 다르다. 만약 누군가를 계속 의심하면 그 사람과 결코 가까워질 수가 없다. 결국 멀리하게 된다. ‘의인불용 용인불의(擬人不用 用人不疑)’라고 하지 않았던가. 의심이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쓰고 나면 의심하지 마라. 어떤 사람이 날 배신할까. 이것이 궁금해지면 답은 간단하다. 내가 불신하는 사람,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하게 돼 있다. 그래서 사람을 불신하는 사람은 불신당하게 돼 있다. 그 예는 너무 많아 굳이 특정할 필요조차 없다. 뉴스를 한번 보기만 하면 바로 나온다.


신기한 물건에 관심이 많은 임금님이 한 분 있었다. 요즘 말로 얼리 어답터라고나 할까. 한 인간이 찾아와 말하기를 “폐하, 저에게는 신통한 재주와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쑤시개 끝에 원숭이를 조각할 수 있습니다.” “오호 그것 참 신통하구나. 어디 한번 볼 수 있을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현재 샘플은 없습니다. 저에게 한 달만 시간을 주시면 만들 수 있습니다. 참 제작비용의 절반인 착수금을 먼저 주시면 너무나도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임금님이라면 그 돈을 시제품을 보지도 않고 먼저 지불하겠는가. 신하 한 명이 임금님의 결정을 돕기 위해 한 말이 인상적이다. “그 조각공에게 이쑤시개 끝에 원숭이를 조각할 수 있는 연장을 보여달라고 하십시오.” 중국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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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는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그래도 의심할 수 없는 팩트에 기초해 모든 일을 진행하라. 사람도 쓰기 전에 능력이 있는지, 성실한지 요리조리 테스트해보라. 그러나 일단 쓰고 나면 믿고 맡기는 것이 맞는다. 쓰고 나서도 계속 의심하면 그 인간은 결국 배신하게 돼 있다. 사람은 사물과 달리 훨씬 까다롭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라 그렇다. 팩트는 의심하고 인간은 믿어줘라.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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