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글로벌WHAT] '007의 나라'는 어쩌다 러 스파이에 안방 내줬나

■스파이전쟁 다시 불붙는 신냉전시대

1990년 냉전체제 종료 불구 美·러 여전히 막대한 예산 쏟아부어

첩보기관 제왕 CIA, 오사마 빈라덴 잡으며 정보력 전세계에 과시

옛 소련 KGB, 푸틴 정적 제거·SNS로 선거 개입 등 공작 활발

英은 유럽내 3대 첩보기관 갖췄지만 IS·러 공작원에 공격당해

트럼프, 물고문 책임자 女 CIA국장 내정 등 첩보전쟁 가속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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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11월 영국 런던의 밀레니엄호텔에서 한 남성이 옛 동료 2명과 점심식사를 한 뒤 홍차를 마시다 갑자기 쓰러졌다.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남성은 응급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극심한 구토와 신장기능 저하 증상 등을 겪다가 3주 만에 사망했다.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해 영국 당국은 “치사량의 방사능 물질인 폴로늄-210이 든 차를 마셨기 때문”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암살을 실행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리트비넨코는 전직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으로 영국 정보기관인 해외정보국(MI6)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2000년까지 푸틴의 측근이었다가 영국으로 망명한 뒤 푸틴 비판자로 돌아섰다. 이후 영국 정보기관인 MI6에 러시아 조직범죄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러시아는 이 같은 리트비넨코의 행위에 대해 보복을 한 것이다.

2006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러시아 공작원들에 의해 방사능 차를 마시고 사망한 전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AP연합뉴스2006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러시아 공작원들에 의해 방사능 차를 마시고 사망한 전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AP연합뉴스


이 사건은 영국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러시아 정보기관의 ‘방사능 차’ 암살로 수법이 너무 잔혹해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동시에 KGB 조직이 아직 굳건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각인시켰다. 반면 미국 중앙정보국(CIA), KGB와 함께 세계 3대 정보기관으로 불리며 영화 ‘007’로 유명한 영국 MI6는 안방에서 체면을 구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의 스파이 활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영국의 한 쇼핑몰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이중스파이 암살시도 사건으로 또다시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러시아 정보기관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암살공작이 잇따르고 이에 맞서 미국과 영국·독일 등이 자국 정보기관의 첩보활동을 강화하면서 1950년대 냉전 시대 이후 물밑으로 가라앉은 스파이 전쟁에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불이 붙는 모양새다.


스파이 전쟁의 역사는 1950년대 냉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미국과 옛소련은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이후 1990년 6월 소련이 붕괴하며 공식적인 냉전체제는 종료됐지만 미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더욱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며 첩보전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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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은 총 16개의 정보기관을 두고 있다. 이들 기관은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총괄·지휘한다. 소속 연방요원만도 11만명에 이른다. 대표적인 첩보기관은 CIA로 세계 정보기관의 제왕으로 불린다. 2011년 5월에는 CIA가 알카에다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등 엄청난 정보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는 고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CIA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기기, 스마트TV 등을 해킹해 도·감청 장치로 활용했다”며 총 8,761건의 문서와 파일이 담긴 기밀문서를 공개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러시아로 망명한 전직 국가안보국(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회계연도 정보기관의 총예산 526억달러 중 28%에 달하는 147억달러가 CIA에 집중됐다”며 정보기관의 ‘검은 예산’을 폭로하기도 했다.

미국과 대척점에 있던 옛소련의 KGB는 소련 붕괴 이후 조직이 둘로 갈렸다. KGB 제2총국은 연방보안국(FSB)이 됐고 해외업무를 담당하던 제1총국은 해외정보국(SVR)으로 역할이 분담됐다.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로 불리는 푸틴 대통령도 KGB 출신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공작기관의 활동은 크게 푸틴의 정적 제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용한 서방국가에 대한 선거 개입 등으로 나뉜다. 특히 러 기관의 정치공작은 매우 노골적이다. 지난달 16일 미국의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페이스북 등 SNS의 게시글과 광고 등을 이용해 미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러시아 인사 13명과 러시아 기관 3곳을 기소했다. 뮬러 특검에 따르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러시아 정보기관이 운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터넷리서치에이전시(IRA)’는 미국인의 신원을 도용한 가짜 계정으로 SNS를 통해 당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원하는 한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흠집 낸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은 유럽 내 최고 국방력을 자랑하며 국내보안부(MI5), MI6, 정보통신본부(GCHQ) 등 3대 첩보기관을 거느리고 있다. 독자적 정보라인 외에도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과 국제정보협력체인 ‘파이브아이스(Five Eyes)’를 결성하는 등 정보수집 범위가 가장 방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런던과 맨체스터 등에서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추종세력인 ‘외로운 늑대’나 러시아 공작원에게 안방을 내주는 허점을 계속 노출하며 자국에서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의 스파이 활동 강화를 시사하는 조치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CIA의 어두운 역사로 불리는 ‘물고문 프로그램’ 책임자였던 지나 해스펄을 CIA 첫 여성 국장으로 내정해 첩보전쟁을 강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웨슬리 웍스 미 오타와대 공공·국제문제대학원 교수는 “스파이를 활용한 암살행위를 비롯해 첩보활동 강화를 통한 상대국에 대한 직간접적 침략행위”라며 “최근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글로벌 사이버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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