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대학로에서 만난 김선영은 “뮤지컬계의 여왕 김선영씨와 저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며 “전 보잘 것 없는 우스운 사람이다”고 겸손함을 내비쳤다.
김선영은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후 영화 ‘원라인’, 종합편성채널 JTBC ‘욱씨남정기’, SBS ‘원티드’ MBC ‘쇼핑왕 루이’,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등 매 작품마다 뛰어난 흡인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최근 김희애 김해숙 이유영 주연의 영화 ‘허스토리’ (감독 민규동)촬영을 마치고 윤계상 유혜진 주연의 영화‘말모이’ (감독 엄유나)촬영에도 돌입했다.
김선영은 브라운관, 스크린 등에서 소중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연기는 수 많은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마력이 있어서 ‘연기 잘 하는 배우’의 대명사로 불린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연기 잘 하는 배우로 불리는 건 가당치도 않다. 그냥 누가 봐도 우습게 편안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극단 나베의 대표이기도 한 김선영은 현재 대학로 무대에 오른 연극 ‘모럴 패밀리’에 정성을 쏟고 있다. 연극은 기괴하게 뒤틀린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본드와 알코올에 찌들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큰오빠, 술집 여자인 큰누나, 인터넷 성인방송 BJ(개인방송 진행자)인 셋째 여동생, 본인이 게이임을 고백하며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하는 남동생, 그리고 젖먹이 어린 막내(?)가 한 집안에서 지지고 볶고 산다. 욕설은 기본, 육탄전은 애교일 정도다. 전쟁과도 같은 하루 하루를 보내 던 어느 날, 그들 앞에 13년 전 도망간 엄마가 더 큰 폭탄을 들고 찾아 오게 된다.
누군가는 이들 가족을 보고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의 이야이다’며 고개를 흔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선영은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이다기 보다는 ‘많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처벌 받고 정제 받아야 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고 설명했다.
제목 역시 반어적이다. 전혀 도덕적이지 않은 가족들이 등장하는 연극 ‘모럴 패밀리’이니 말이다. 김 대표는 “모럴이 뭔지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작품이다. 오히려 연극 속 가족들이 가장 끈끈하지 않냐”면서 되 묻기도 했다. 연극을 보면서 아이러니함과 동시에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대기업에 다니는 아빠, 전교 1등하는 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집을 봐도, 대화를 많이 하던가? 거의 핸드폰만 하고 있지 않나. 아무런 소통도 없이 지내다 자살하기도 하지 않나. 그런 지점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모럴’이란 게 그렇지 않나. 이 정도 되면 연민이 가는데, 그걸 넘어가면 용서가 안 된다.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자 했다.”
이승원 감독의 영화 ‘소통과 거짓말’‘해피뻐스데이’도 그렇지만 이 작품 역시 수위와 강도가 상당히 세다. 이승원 감독의 아내인 김선영씨 역시 처음엔 “왜 이렇게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초연 때는 극장에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 앙코르 공연을 보고선 계속 울었다고 한다. 그는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며 “대본에 숨을 불어넣는 배우들을 보면서 대본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김선영 이승원 커플은 사랑꾼 부부로 유명하다. 작품 세계가 맞고 말이 통해서 연인 관계로 지내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는 “저희 부부는 정제되지 않은 것에 서로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공통점을 언급하기도.
“제가 도가 넘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누가 ‘안 된다’고 하면, ‘왜 그걸 하면 안 되나?’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 냐고 물어보면서 관심이 많았다. 남편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이다.“
‘연극’은 김선영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했다. 중학교 때 연극반을 경험한 김선영은 “너무 재미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당시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박수를 치고, 무대가 사라지는 걸 보며 가슴이 아팠던 소녀는 ‘연출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연출이 연기를 가르치는 걸로 알았던 것. 연출의 의미를 알게 된 이후 배우에 도전했다.
“그것보다 재미있는 게 없었다. 그게 제일 재미있었으니까. 연기를 보고, 연기에 대해 공부하고, 연기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 일이 좋다. 배우가 무대를 온전히 책임지고, 온전히 집중 할 수 있는 연극, 이걸 놓을 수 없다. 배우가 성장하는 그 과정도 좋다.”
사실 ‘모럴 패밀리’는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올리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이 모든 삶의 고통을 겪어내는 배우들을 보며, 같은 배우로서 ‘너무 가혹하다’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하지만 그만큼 배우들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인간의 아픔, 삶의 가혹함이 더욱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마지막 장면 이후 암전이 되면, 통곡을 하는 관객, 속으로 눈물을 삼키는 관객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다시 공연을 보면서, 이 공연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성 선배님 말씀처럼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한편, 연극 ‘모럴 패밀리’는 4월 1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4관)에서 만날 수 있다. 배우 박지훈, 김권후, 김선미, 김애진, 연설하, 강선영, 박지홍, 김성민, 김경덕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