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우선순위 뒤바뀐 건보 보장성 강화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진행돼야 한다. 필요성·시급성이 크지 않은 곳에 너무 많은 건강보험 재정을 쓰면 치료가 더 시급하고 중한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진단·치료비의 과잉 삭감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치매 국가책임제 발표 후 정부는 뇌 자기공명영상(MRI)으로 경도(輕度)인지장애 검사를 하는 데 엄청난 건강보험 재정을 쓰기로 했다. 노인 인구의 10~20%인 100만~200만명이 경도인지장애로 추정돼 연간 2,000억~4,000억원의 재정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경도인지장애는 집중력·기억력·판단력과 언어·시공간 능력 등 다섯 가지 인지기능 중 한 가지만 떨어져도 진단할 수 있다. 10%가량이 치매로 진행할 수 있다고 해서 관심을 받고 있지만 질환이라고 보기 어렵고 예방·치료약도 없다.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것은 규칙적인 운동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경도인지장애 뇌 MRI에 의료보험을 적용하지 않는다.

반면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최후의 치료방법인 뇌 부분절제수술을 할 때 머리뼈 속 뇌에서 직접 피질뇌파 검사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두개강(頭蓋腔) 내 전극 비용은 툭하면 1인당 100만~200만원씩 삭감한다. 지난 2016년 6월 부당한 삭감으로 뇌전증 수술을 중단해야 하는 지경까지 갔었는데 같은 일이 요즘 또 벌어지고 있다.


건강보험당국이 이 전극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비를 삭감하면 병원은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 수술을 하는 의료진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피가 마르고 수술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이 된다. 결국 환자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매우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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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수술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고 신경과·신경외과·소아신경과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 그래서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전국에 4~5곳밖에 안 된다. 두개강 내 전극 삽입을 통한 뇌전증 수술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다. 국가에서 장려하고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뇌전증 수술을 배우거나 시행한 적 없는 의사들이 구체적인 심사기준 없이 본인 생각에 따라 급여비를 과잉 삭감하는 현실이 개탄스럽고 자괴감이 든다.

국내에서 뇌전증 수술을 받는 환자는 1년에 500명도 안 된다. 이 중 지난해 두개강 안에 전극을 삽입해 수술을 받은 사람은 100명 이하다. 두개강 내 전극을 포함한 이들의 전체 수술비용 중 건강보험재정 부담액은 총 15억~20억원가량이다.

필요성·시급성이 떨어지는 경도인지장애 MRI 검사에 연간 수천억원을 지원하면서 100명도 안 되는 중증 난치성 뇌전증 수술 환자들의 두개강 내 전극 비용을 삭감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형평성에 너무 어긋난다.

환자와 가족은 뇌전증 수술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미국·유럽은 물론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뇌전증 수술에 사용되는 두개강 내 전극 급여비를 삭감하는 예를 찾아볼 수 없다. 2016년 6월 대한뇌전증학회는 뇌전증 수술을 하는 모든 신경외과 의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긴급 수술위원회를 열어 뇌전증 수술 중 뇌파 검사를 할 때 두개강 내 전극을 2개까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2016년 대한뇌전증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한 미국·유럽의 뇌전증 전문가들은 두개강 내 전극 급여비를 삭감하는 당국의 조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고도 우리나라가 보건의료 선진국인지 반문하고 싶다. 약물 난치성 중증 뇌전증 환자의 유일한 치료방법인 수술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두개강 내 전극 급여비 삭감이 하루빨리 중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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