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그 자체로 한국 현대무용의 미래로 꼽히는 LDP(Laboratory Dance Project)무용단이 ‘LDP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중견 무용수에서 신진 안무가로 한 걸음 더 내딛고 있는 임샛별, 김성현, 이정민을 통해서다. 지금까지 매년 봄 정기공연은 해외 안무가의 작품을 앞세웠던 것이 사실. 그러나 오는 23~25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제18회 정기공연은 세 사람의 손에서 LDP에 의한 LDP의 공연으로 꾸며진다.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기공연에 직접 안무한 작품을 올리겠다고 손을 들었다. 모든 결정을 토론과 투표로 하는 LDP 특유의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세 사람은 정기공연 안무를 맡게 됐다. 김동규 LDP무용단 대표는 “세 사람이 창단 20년 역사를 앞두고 있는 LDP의 혁명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낼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번 정기공연은 신창호, 차진엽, 김재덕, 김보라 등 대표적인 현대무용 안무가를 배출해낸 LDP가 LDP의 다음 20년을 여는 자리인 셈이다.
18일 서울 사당동의 연습실에서 막바지 공연 준비가 한창인 임샛별·김성현·이정민을 만났다. 세 사람 중 막내인 이정민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무용단 내에서 외국인 안무자에게 의존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기존 정기공연 방식을 벗어나 보자는 의견이 있었다”며 “나이를 떠나 가장 어린 무용수에게도 안무 기회를 주는 것은 LDP 특유의 문화 덕분”이라고 소개했다. LDP라는 이름 자체에 ‘실험’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는 단체답게 매년 정기공연은 LDP의 가능성을 펼쳐내는 자리였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임샛별은 8명의 여성단원들과 함께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는 ‘소녀’를 선보인다. 그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사회가 제시한 미의 기준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동시에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 비난받는 여성들의 신체와 이로 인해 생기는 상처도 다뤘다”고 말했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과 무대장식 등을 최소화하고 몸의 언어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댄서들의 개성과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역시 이번 무대의 목표다.
세계적인 안무가 제임스 커즌스 등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댄싱머신’ 김성현은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에서 영화와 다큐를 공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실험에 나선다. 그가 선보일 ‘이념의 무게’는 처음으로 라이브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활과 봇짐, 해골, 스마트폰 등 오브제와 칠판 등 다양한 무대 장치 활용도 눈에 띈다. 김성현은 “LDP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스며든 작품들이 강점인데 이번 작품은 라이브 영상을 활용해 색다른 장면을 구성하면서 무용수들의 몸짓은 틀에서 벗어난 듯 다소 정적으로 꾸며봤다”며 “이 점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앞선 두 사람이 무대 위의 실험을 택했다면 이정민은 색다른 안무법을 내세웠다. ‘거울 앞 인간’의 모티브가 된 사건 영상을 무용수 한 사람씩 감상하게 하고 이를 즉흥으로 표현하기를 반복, 단계별로 장면을 구성했다. 이정민은 “거울 앞에 서면 누구나 거울에 비친 우리의 겉모습에 주목하기 때문에 숨겨진 우리 안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며 “보이는 것 안의 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LDP는 지난달 25일 평창동계올림픽 폐막 공연에서 빛을 활용한 미디어아트와 역동적인 현대무용을 결합한 ‘새로운 시간의 축’을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4분 남짓 진행된 공연이 끝나자 LDP 공식 홈페이지는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세 사람 역시 폐막식 무대의 주역이었다. 김성현은 “경계 없는 무대가 주는 해방감의 여운이 지금도 남아 있다”며 “그때의 에너지가 정기공연에서도 발산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미 케이블방송 ‘댄싱9’으로 무용 대중화의 가능성을 엿봤던 임샛별은 “4만명의 관객이 내뿜은 열기가 현대무용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정민은 “속눈썹이 얼 정도의 강추위를 이겨내는 게 힘겨웠는데 이후 반응을 보니 또 한 번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현대무용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려면 이번 공연을 더욱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23~2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