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금융 저승사자 김기식 금감원장 임명] 金, 금융권에 고강도 군기잡기…은산분리 완화 물건너 가나

"은행들 경쟁 없이 온실 속서 성장"

金 내정자 금융산업에 비판적 견해

은행법 개정 묶고 규제 강화 가능성

지배구조 놓고 금융사와 갈등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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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전쟁’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국내 A 은행 고위 관계자)

금융권에서 ‘저승사자’로 통하는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되면서 금융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제기한 금융지주 지배구조 문제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각종 개혁작업이 한층 강화될 수 있어서다. 특히 참여연대 출신인 김 원장은 국내 금융산업에 대해 “재벌과 은행 중심으로 온실 속에서 경쟁 없이 성장해왔다”며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온 터라 금융권이 일방적으로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그는 국회 정무위 간사를 지내면서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 등 반(反)기업 규제는 강화한 반면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은행법 개정에는 강력하게 반대해왔다. 당장 금융권에서는 국회에서 1년 넘게 표류하고 있는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과 특별법 제정이 사실상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은행법은 금융회사가 아닌 산업자본(기업)이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10%까지만 가질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최대 34~50%까지 늘리자는 게 은행법 개정안의 골자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설립을 각각 주도해온 KT와 카카오 등은 은행법 규제에 막혀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지 못하면서 시중은행을 견인할 혁신에 실패해 ‘시중은행 2중대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김 신임 원장이 정무위 간사를 지내면서 은행법 개정을 막기 위해 별다른 이견이 없는 금융 관련법 수십 건의 개정도 억지로 중단시켜 진땀을 흘린 기억이 있다”며 “그동안 당국과 은행들이 마찰을 빚어온 금융회사 지배구조 문제도 갈등의 수위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산업을 바라보는 김 원장의 시각이 다소 편향적이라는 것도 금융권에는 부담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은행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거나 해외에 진출해 크게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고 은행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평가 절하하면서 “은행과 재벌 계열회사 중심인 제2금융권은 등 따뜻하고 배부른 현실에 안주해 성장과 발전의 유인 동기가 없다”며 국내 금융산업을 싸잡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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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자산운용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김 원장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기존 금융산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민간 금융회사뿐만이 아니다. 금융위원회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 원장이 현 정부에서 ‘성골’로 통하는 참여연대 출신인데다 의정활동 경험까지 갖춰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제치고 금융당국의 수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금융위 패싱’ 논란이 더 확대될 수 있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김 원장이 일정 기간 금감원장을 맡다가 바로 차기 금융위원장으로 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벌써 나돌고 있다.

김 원장이 정무위 간사 시절 금융위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해온 점도 금융위로서는 부담이다.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안 반대는 물론이고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개정에도 김 원장은 완강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올 6월 일몰되는 기촉법을 상시화해 ‘워크아웃’ 제도를 구조조정의 한 수단으로 남겨두자는 게 금융위의 입장인 반면 김 원장은 법정관리로 일원화하는 게 옳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김 원장은 구조조정 문제에 강한 애착을 가졌던 만큼 그동안 한국GM 등 구조조정 이슈에서 사실상 한 발짝 떨어져 있던 금감원이 앞으로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현재 구조조정 절차의 문제점에 대해 “관치(官治)에 대한 모피아들의 집착과 미련이 크다”고 직접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김 원장이 금융권을 청산해야 할 ‘적폐’로 상대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시장이 시끄러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김 원장이 금융시장을 정말 잘 아는 전문가로 보기는 어렵다”며 “금융위 입장에서는 좋아하기 어려운 분”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최 전 원장이 제기한 지배구조 문제를 놓고 김 원장이 다시 한 번 드라이브를 걸 경우 KB금융과 하나금융 등 금융지주들과 갈등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서는 주주총회에서 최종 선임된 금융지주 회장을 금감원이 다시 흔들기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김 원장이 내부 조직의 응집을 위해 지배구조 논란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금감원의 명예회복을 명분 삼아 채용비리와 지배구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수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김 원장은 1966년생으로 금감원 역대 최연소 원장이다. 이 때문에 조직 물갈이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감원 임원 가운데 민병진 부원장보(66년생)을 제외하고 유광열 수석부원장(64년생), 권인원 부원장(58년생), 원승연 부원장(64년생), 이상제 부원장(60년생), 최성일 부원장보(64년생), 설인배 부원장보(63년생), 윤창의 부원장보(65년생), 오승원 부원장보(64년생), 김도인 부원장보(64년생), 조효제 부원장보(64년생) 등은 모두 김 원장보다 나이가 많다.

김 원장 발탁은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강조한 금융혁신 속도론과 맞물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최 전 원장이 채용비리로 전격 경질된 직후인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금융혁신 과제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달라”며 이례적인 주문을 했다. 그동안의 ‘보여주기 식 금융개혁’이 아니라 서민이나 중기 등에 도움이 되는 근본적인 개혁을 하라는 것으로 강한 그립을 가진 김 원장이 제격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원장 대행체제를 오래 유지할 경우 문재인 정부 출범 제기된 ‘금융홀대론’이 다시 한 번 불붙을 수 있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증과정의 논란을 피해야 해 이미 검증된 김 원장이 자연스레 뽑혔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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