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끽하고 ‘군 철책’으로 상징되는 분단의 현장을 피부로 느꼈으니 그럴 만했다. 제주 올레길처럼 평화누리길 역시 코스가 나뉘어 있다. 김포 3코스, 고양 2코스, 파주 4코스, 연천 3코스 등 모두 12코스로 총 190여㎞에 이른다. 마을 안길에서 논길·제방길 등으로 이뤄져 여느 걷기 코스와 닮은 듯하지만 가치는 남다르지 싶다.
현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함과 동시에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동식물 보고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1·21 무장공비 침투로, 제3땅굴, 철도 종단점, 애기봉 전망대 등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다. 천연기념물인 재두루미·저어새 등의 서식지도 있다.
특히 평화누리길에는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역사유적이 산재해 있다. 임진강가에는 율곡 이이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던 화석정이 눈에 들어온다. 연천 코스에는 태조 왕건을 비롯해 현종·문종·원종 등 네 명의 고려 왕과 강감찬·정몽주 등 고려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숭의전이 있다. 조선시대 진영인 덕포진, 권율 장군의 얼이 서린 행주산성 등도 들를 수 있다. ‘평화누리길=역사탐방길’이라는 이유를 알 만하다.
고양시가 평화누리길 한강하구에 남아 있는 군 철책선 철거를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대상은 김포대교∼일산대교 9.6㎞ 구간. 시는 최근 군에 이곳의 철책 제거를 위한 동의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 철책은 1970년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된 뒤 48년째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돼온 상태다. 군과의 협의를 거쳐 연내 철거를 본격화할 예정이라니 기대된다. 철책 없이 탁 트인 평화누리길을 걷는 날이 가까이 온 것 같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