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일으킨 미중 간 무역전쟁이 지난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당시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던 일본을 타깃 삼아 일으킨 통상마찰의 ‘데자뷔’로 부각되고 있다. 30여년 전 당시 최대 무역적자국인 일본의 수출을 제한하기 위해 ‘슈퍼301조’ 등 보호무역 수단을 총동원해 맹공을 펼쳤듯 미국이 최근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려 중국 수입품에 관세 폭탄 등 무역제재를 가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가 1980년대를 부활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당시 동맹국인 일본이 미국 측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며 양보했던 것과 달리 미국과 글로벌 패권경쟁을 벌이는 중국은 정면충돌까지 불사하고 있어 이번 통상전쟁은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경고가 확산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1년 집권하자마자 미국 시장 점유율을 파죽지세로 높이며 수출을 확대해온 일본에 집중적인 통상 압력을 가했다. 일본에 자발적으로 수출을 줄일 것을 강하게 요구한 레이건 행정부는 1981년 일본과 자동차 수입제한 합의를 시작으로 전자·철강·기계제품 등의 분야에서 순차적으로 무역제한을 끌어냈다. 1985년 9월에는 일본의 수출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환율을 정조준한 ‘플라자합의’를 체결해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를 낮추고 엔화를 절상했다. 이후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2년 만에 65%나 절상되는 초강세를 보여 일본 제품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고전했다.
30년 뒤, 2016년 대선 당시부터 “미국은 중국에 털리는 돼지저금통”이라며 대중 공세를 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도록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미 수출은 알아서 줄이고 미국 제품은 더 많이 사라고 중국을 압박하는 트럼프의 공세는 1980년대 레이건 정부가 일본의 팔을 비틀던 수법과 유사하다. 현재 무역전쟁의 선봉장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당시 USTR 부대표로 일본 압박에 나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의 대일 적자를 완화하고 1990년대 미국 경기회복으로 이어졌던 레이건의 보호무역주의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과거 일본과 달리 지금의 중국 시장은 미국을 위협할 수준으로 커 일부 미국 제조업의 경우 미국보다 중국 시장이 더 중요한 상태다.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 기업들에 치명상이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냉전시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한 동맹국 일본이 미국의 통상 압박을 받아들이고 사실상 환율 주권까지 내준 것과 달리 미국과 경쟁관계인 중국은 ‘눈에는 눈’으로 맞설 태세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미중이 통상전쟁에서 적당히 실리와 체면을 챙기면서 수습 국면으로 들어설지 아니면 순항하는 세계 경제에 쓰나미를 일으키며 파국으로 치달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무역보복을 통해 중국을 억누르려는 정치적 필요성까지 고려할 경우 양국 간 무역분쟁은 상황이 복잡해져 장기적인 수렁이 될 수도 있다”고 짚었다./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