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무(1958~)
구름을 밀며 나는 새의 날갯짓에 밑줄을 긋는다
바람 없는 날 비단실처럼 흐르는 강물에 밑줄을 긋는다
자라처럼 목을 어깨 속에 감추고
언덕길에 질질 숨 흘리는 노인의 신발 뒤축에 밑줄을 긋는다
공중의 백지에 일필휘지하는 붓꽃 향기에 밑줄을 긋는다
늦은 밤 방범창을 타고 넘어오는
이웃집 여인의 가느다란 흐느낌에 밑줄을 긋는다
하늘 정원에 핀 별꽃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새의 날갯짓에 밑줄을 그으려 까치발을 하셨군요. 강물에 밑줄을 긋다가 풍덩 발목이 빠졌군요. 노인의 신발 뒤축에 밑줄을 긋느라 웅크려 앉으셨군요. 붓꽃 향기에 밑줄을 긋느라 콧방울을 벌름거리셨군요. 여인의 흐느낌에 밑줄을 긋느라 밤새 모로 누운 몸 뒤척이셨군요. 별꽃 문장에 밑줄을 긋느라 애먼 발가락이 돌부리 걷어찼군요. 학창시절 내내 배운 게 밑줄 긋는 법인데, 시험에 나오지 않을 대목만 그으셨군요. ‘무용한 아름다움이거나, 저린 슬픔이거나!’ 어쩌면 당신 신발 뒤축의 편마모는 유용하거나 기쁨 쪽으로만 기울어진 세상의 밑줄을 고여 주는 쐐기처럼도 여겨지는군요.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