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사랑, 홋카이도가 그리고 칠하다

한일합작 판타지멜로 '바람의 색' 5일 개봉

로맨스 거장 곽재용 감독

새하얀 유빙·짙푸른 바다 등

홋카이도의 그림 같은 풍광에

다채로운 OST로 감정선 살려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유빙을 가르는 배 위에 두 남녀가 섰다.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한 남자 ‘료’(후루카와 유우카)와 마술 공연 중 사라진 연인과 꼭 닮은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아야’(후지이 타케미)가 뜨겁게 입을 맞춘다. 서정적인 음악과 스크린을 압도하는 풍광 속에 객석은 숨이 멎은 듯 고요하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1989) ‘엽기적인 그녀’(2001) ‘클래식’(2003) 등 사랑의 풍경화를 줄곧 그려온 로맨스 거장 곽재용이 한·일 합작 판타지 로맨스 ‘바람의 색’으로 또 한편의 수채화를 완성했다는 상징 같은 장면이다.

운명적 사랑을 노래하던 곽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마술과 도플갱어 소재를 꺼내 들었다. 도플갱어의 존재를 알게 된 료가 도플갱어의 옛 연인 아야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들의 정체성, 사랑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독특한 점은 첫번째 캐스팅이 홋카이도라는 점이다. 5일 이 영화의 개봉에 앞서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곽 감독은 “영화제에 참석했다가 홋카이도의 마술 같은 풍광에 매료됐고 그에 어울리는 판타지 로맨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며 “2007~2008년 홋카이도를 여행하며 작품을 구상했고 2010년말 삿포로에 한 달간 머물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소개했다.


영화 곳곳에는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존재감을 뽐낸다. 오호츠크 해안의 유빙을 볼 수 있는 아바시리, 청명한 하늘과 짙은 바다가 대비되는 샤리군, 순백의 땅 기타미까지 홋카이도의 보석 같은 풍경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굳이 나누자면 곽재용 월드에서 스토리는 부차적이다. 기찻길과 찻길이 나뉘며 설경을 달리던 두 남녀가 헤어지는 장면, 빗속을 걷던 여자가 남자를 애틋하게 바라보던 장면 등 잔상이 길게 남는 장면들 대부분은 줄거리와 관계없이 관객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든 장면들이다. 곽 감독은 “관객들이 장면에 취하고 나와 동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토리보다 장면을 먼저 구상할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서정적인 영상미와 작품 전반의 감정을 끌어주는 OST에 힘을 주는 곽 감독답게 이번 작품 역시 한 편의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듯하다. 물론 음악의 힘은 김준성이라는 걸출한 음악감독에게서 나오지만 음악이 작품 전체에 스며들게 한 데는 곽 감독의 공이 크다. 곽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음악을 선정하고 해당 장면을 촬영할 때는 배우와 스태프가 반복해서 음악을 듣고 그에 맞게 카메라 프레임이나 대사의 속도 등을 맞춘다”며 “배우와 스태프가 현장에서 어떤 감정으로 장면을 만들었는지 극장에 앉은 관객들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 감독이 한창 국내에서 활동하던 2000년 전후와 달리 최근 2~3년간 국내 영화 중에선 로맨스 흥행작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손예진·소지섭 주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멜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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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 멜로는 지나치게 현실성을 따지다 보니 소재 고갈과 뻔한 공식의 늪에 빠졌다”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바람의 색’이 가세하며 새로운 스타일의 멜로로 희망을 열어보길 기대한다”며 웃었다.

당장 차기작도 멜로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곽 감독에겐 여전히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엽기적인 그녀’에 보면 견우(배우 차태현)가 액션, 사극, SF까지 별 시나리오를 다 쓰잖아요. 그게 다 제가 쓰고 싶은 시나리오들이에요. 지금은 관객들이 곽재용 하면 멜로만 떠올리지만 언젠가는 다른 장르도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사진제공=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 ‘바람의 색’의 곽재용 감독영화 ‘바람의 색’의 곽재용 감독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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