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하고 신축성이 뛰어난 새로운 터치패널(터치스크린) 기술이 개발돼 5~10년 뒤에는 손이나 팔에 간단히 부착한 뒤 휴대폰이나 TV·게임·전자악기 등 웨어러블 기기를 편리하게 작동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10~20년 뒤 반도체 회로나 배터리까지 초소형화해 몸에 부착하는 휴대폰·컴퓨터가 개발될 경우에도 이 터치패널 기술이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선정윤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젤리와 같은 하이드로젤을 활용해 투명하고 신축성이 큰 터치패널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4월 수상자로 선정됐다.
선 교수가 개발한 기술은 투명한 세라믹 전도체를 쓰는 기존 터치패널에 비해 구부러지고 늘어나는 특징이 있어 화면을 구부릴 수 있는 플렉시블(flexible) 전자기기 등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만드는 과정도 쉽고 제작비용도 저렴하다. 선 교수는 “앞으로 휴대폰·컴퓨터·의료기기·사물인터넷(IoT) 등 적용 분야가 다양할 것”이라며 “전자업체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은 특허출원 단계라 일부 특정 분야 중심으로만 기업과 공동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에 쓰이는 기존 터치패널은 전기회로와 트랜지스터·다이오드 등을 포함해 단단하고 자칫하면 깨지는 경향이 있다.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웨어러블 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셈이다. 이에 따라 카본나노튜브와 은나노와이어 등을 활용한 웨어러블 터치패널 개발이 시도되고 있지만 전자 소재를 기반으로 진행돼 투과도와 전도도가 좋지 않은 문제가 있다.
선 교수는 이온을 포함한 하이드로젤을 활용해 투명도와 신축성이 높은 전극을 만들어 사람 피부 등 움직이는 표면에도 부착 가능한 터치패널 기술을 구현했다. 전자 대신 이온을 전하운반체로 사용하는 이오닉(ionic) 소재와 전기 장치를 접목할 때 걸림돌이었던 경계면의 전기화학 반응과 신호지연 문제를 해결하며 기존 터치패널 수준의 신호 전달력을 입증했다. 그는 “가시광선 투과도가 99.9%라 피부에 부착했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예쁘게 꾸미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이드로젤은 폴리머와 용매인 물이 균일하게 섞인 젤리 상태의 물질로 물의 특성인 높은 생체 적합성과 젤의 특성인 인장성과 신축성을 갖고 있다. 수분을 90% 이상 포함한 고체로 물을 잘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기저귀 흡수층, 콘택트렌즈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몸에 들어가도 세포를 손상시키지 않아 치료 약물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화학 분야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선 교수는 깨지기 쉬운 문제가 있는 하이드로젤을 실리콘의 일종인 폴리디메틸실록산(PDMS)보다 10배나 더 단단하게 만들고 이오닉 장치까지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하이드로젤이 고체이면서 액체와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신개념 터치패널의 소재로 쓰게 됐다”며 “기존 소재들이 풀지 못한 투명도와 신축성, 생체적합성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의의를 밝혔다.
선 교수팀은 새로운 터치패널을 사람의 팔에 부착한 뒤 컴퓨터와 게임기·전자악기 등을 연동해 간단한 글쓰기나 음악 연주, 게임 등을 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패널보다 10배 이상 신축성이 우수하고 투명도도 뛰어나 앞으로 산업현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인장센서나 압력센서 등을 하이드로젤 기반 이오닉 장치로 만들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됐다. 선 교수는 “IoT의 핵심은 사람의 의도를 기계에 전달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인데 이오닉 디바이스로 사람과 기계 간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려는 후속연구의 바탕이 마련됐다”며 “IoT 시대를 맞아 앞으로 이오닉 시스템과 인간의 신경이 상호작용하는 완벽한 인터페이스 기술을 구축하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피력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