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기업 창립일 축하해주는 정부를 보고 싶다

임석훈 논설위원

국가경제에 기여한 역할은 외면

비판·윽박지르기에 기업 풀죽어

정부 일자리 창출등 성과도 미미

기업 격려·소통하는 모습 아쉬워




10여년 전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다녀온 적이 있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가족과 함께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해서다. 포항제철소 견학은 특히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이에게 큰 감동이자 놀라움이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가끔 촘촘히 박힌 제철소 직원들의 얼굴 사진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을 보며 당시를 떠올리고는 한다.

고로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쇳물과 현장에서 구슬땀 흘리며 작업에 열중하던 직원들. 그 모습은 역사의 현장이자 산 교육의 장이었다. 견학 내내 다른 참가자들과 세계 최고 제철소를 둘러본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으로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침 당시는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파이넥스(FINEX) 상용화 설비를 완공·가동에 들어갔던 때여서 감회가 남달랐다. 파이넥스 공법은 환경친화적이고 경제적인 혁신공법으로 100년 역사의 근대식 용광로를 대체했다.

하지만 지금 포항이나 광양제철소에 가면 그때와 같은 감흥이 들지 의문이다. 이달 1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희망찬 미래 비전을 제시했는데도 그렇다. 지금 포스코를 비롯한 재계가 처한 현실 때문이다. 특히 정치 외풍에 시달려온 포스코를 생각하면 더욱 씁쓸하다.


지난 2000년 민영화된 포철은 2년 뒤에 사명까지 포스코로 바꾸며 새 출발을 다짐했다. 그렇지만 역대 정권은 주식 한 주도 없이 포스코를 전리품처럼 여겼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수사는 다반사였고 숱한 낙하산이 투하됐다. 그 결과가 2015년 실적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해 포스코는 계열사들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창립 후 첫 적자를 기록했다. 글로벌 철강 불황 탓도 있었지만 정치 외풍에 휘둘린 무리한 사업 확장 탓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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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 현 회장이 4년 전 처음 취임할 당시 제시했던 슬로건 ‘포스코 더 그레이트(POSCO the Great)’는 포스코를 회생시키기 위해 가장 강력했던 포스코의 위상을 되찾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권 회장 취임 즈음 얼마나 포스코가 위기에 직면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도 그 후유증은 진행형이다. 당장 포스코건설 사옥 매각을 두고 정치권 개입설이 떠다니고 있다.

올해 의미 있는 창립기념연도를 맞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은 포스코만이 아닌 듯하다. 지난달 22일이 창립 80주년이었던 삼성그룹. 이날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별도의 기념행사 없이 계열사 또는 사업장별로 기존에 진행하던 봉사활동을 한 달간 집중하는 것으로 80주년 기념을 대신하기로 했다. 회사를 둘러싼 외부적인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 직원들이 “그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꽤 좋은 실적을 냈는데도 축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밝혔다니 안타깝다.

왜 이렇게 대기업들이 움츠러든 것일까. 복합적인 요인이 있을 것이다. 기업이나 경영진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어느 때라도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으로 인해 지탄의 대상이 되거나 불이익을 받으면 감수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외부 압력과 간섭이 주요인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정권이나 정치권이 대기업을 전리품이나 길들여야 되는 대상으로 여기고 흔들어댄다면 더욱 그렇다. 기업경영을 정치 논리로 접근해 들쑤셔 놓고는 뒤처리는 기업이 알아서 하라고 한 정치권부터 반성할 일이다. 무엇보다 국가 경제에 대한 대기업의 기여는 부정된 채 부정적인 면만 부각해 비판하고 윽박지르기만 하면 누가 기업 할 의욕이 생기겠는가.

현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고 투자를 독려하지만 성과가 미미한 것은 재계의 풀이 죽어 있는 것이 근본 원인이다. 지금처럼 대기업들이 주눅 들어 있는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기업은 무역전쟁 최전선에서 우리 국익을 위해 정부와 함께 경쟁국에 맞서 싸워야 할 주체이다. 불법행위가 있으면 책임을 묻더라도 기는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창립기념일에 축하 메시지라도 보내 기업을 격려하고 더 소통하는 정부를 보고 싶은 이유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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