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보험

[미래 못읽는 보험규제] 美·日·中 IT기반 헬스케어 보험 내놓는데...韓, 의료법에 막혀

<중> 4차산업혁명 대응도 못하는 한국

해외선 IT기업·보험사 협업 임산부 건강관리 상품 등 선봬

韓은 의료계 눈치에 비의료기관 헬스케어 서비스 논의 못해

日처럼 위법 여부 불분명한 '회색지대' 해소 제도 도입 시급




미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은 지난 1월 말 보험·헬스케어 업계를 뒤흔드는 발표를 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이끄는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와 함께 임직원 전용 보험·헬스케어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들 3사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새로운 정보기술(IT)에 기반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헬스케어 관련 이종(異種) 간 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중국의 대형 IT 회사 텐센트나 알리바바, 일본 소프트뱅크 등이 온라인 보험회사에 투자하는가 하면 보험사들이 IT 기업과 손잡고 헬스케어 관련 보험을 잇따라 선보이는 중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트렌드와 각종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을 접목한 보험 상품 및 서비스 출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해외와 달리 국내 보험 업계는 각종 규제에 막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헬스케어(건강관리) 서비스다. 고령화와 함께 만성질환이 늘면서 사회적 관심이 커진 가운데 보험 산업과 인슈어테크(보험과 기술의 합성어), 의료기기 및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등 연관 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고 국민 건강 증진 및 의료비 절감을 기대할 수 있어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꼽히는 분야다.

소비자의 몸에 부착된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혈압이나 심박수·혈당수치 등을 측정해 평소에 건강을 유지하면 보험료를 인하해주고 이상이 감지되면 병원 예약을 지원해주거나 병원 정보를 제공해주는 방식이다. 또 건강 상태에 대한 자문이나 관리를 해주는 등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다. 병이 들거나 사망한 후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사후 보장’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건강을 선제적으로 관리해주는 방식으로 보험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지난 2014년 3조원에서 오는 2020년 14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은 헬스케어 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당 19.2명, 고용유발계수는 10억원당 16.9명으로 추산, 전 산업 평균인 13.1명과 8.8명을 각각 상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취업(고용)유발계수는 특정 재화를 10억원 생산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피용자) 수를 뜻한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건강관리를 잘하면 보험료 할인 등 혜택을 주는 ‘건강증진(헬스케어)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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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험사들은 선뜻 상품 출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AIA생명이 걸음 수를 측정해 걸은 만큼 포인트를 쌓아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암보험을 출시하는 등 아주 초보적인 단계의 상품만 나온 상황이다. 의료법상 의료인이 아닌 자는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는데 보험의 건강관리 프로그램이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로 해석돼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주도로 의료기관의 의료행위와 비의료기관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구분하는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에 나섰으나 부처별 입장 차이로 인해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입김이 센 의료계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가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보험사들이 헬스케어 서비스를 활용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면서 우리나라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중국 중안보험은 현지 인터넷기업인 텐센트와 공동으로 혈당측정 단말기를 통해 혈당수치에 따라 보험료를 할인·할증하는 ‘탕샤오베이’라는 건강보험상품을 출시해 호응을 얻고 있다. 중국 안방보험도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임산부 및 태아의 건강을 관리하는 온라인 플랫폼 ‘KAISHI’를 개발해 건강보험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보험회사들의 이 같은 행보에는 정부의 규제 개혁이 원동력이 됐다. 중국 정부는 환자 대비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령화까지 겹쳐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대안으로 헬스케어 서비스 육성을 택했다. 각종 정책적인 지원은 물론 우호적인 규제 환경을 조성해 헬스케어 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 의료 업계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개발을 지원하고 국가 디지털건강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원격의료 가이드라인 도입 및 원격진단·처방 시범 운영 등을 실시하고 있다.

보험 업계 및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헬스케어 서비스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헬스케어와 의료행위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금융전략실장은 “우리나라도 고령사회 진입에 대비해 보험회사가 건강위험 관리자로서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만큼 국내 헬스케어 서비스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사업환경에 맞는 제도적 정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법령 저촉 여부가 불분명한 회색지대(그레이존)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양승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에는 사업자가 구체적인 사업계획에 대해 규제가 적용되는지를 사전에 사업 소관부처의 장관을 경유해 해당 규제 소관부처의 장관에게 확인하는 ‘그레이존 해소 제도’가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이를 시사점으로 삼아 규제 불확실성 해소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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