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비대해진 靑, 장관이 안보인다] 청와대가 '큰 그림' 그려놓고 표 떨어지는 정책 부처에 미뤄

■부처가 보는 청와대

"부처, 거수기로 봐" 불만 적잖아

신남방정책도 외교부 등 깜깜이

"기자들이 취재해 알려달라" 요청




지난 1월 법무부는 ‘거래소 폐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암호화폐 대책을 발표했다. 암호화폐에 투자를 많이 한 청년층을 중심으로 극렬한 반대가 일었다. 거친 반응에 놀란 청와대는 “거래소 폐쇄는 부처 간 합의가 안 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조율이 안 된 대책을 법무부가 성급하게 발표한 해프닝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대책 논의에 참여했던 한 정부 관계자는 “거래소 폐쇄는 청와대와도 의견이 조율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부처의 일방적 발표로 규정해서 당황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관가에서는 청와대가 부처를 거수기나 집행조직으로만 본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40분 만에 끝난 국무회의의 개헌 심사·의결을 비롯해 구조조정 업무와 신남방정책까지 업무 추진 과정에서 부처의 목소리가 빠지고 주요 정보에 대한 접근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향후 신남방정책을 주도할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깜깜이 정책’을 만들 판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신남방정책의 세부 실행 과정이나 정책은 실무부처가 해야 할 텐데 우리도 진행 과정을 모른다”고 밝혔다. “언론에서 취재해 좀 알려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청와대가 지나치게 소소한 일까지 직접 챙긴다는 얘기도 많다. 지난 정부에서는 정무적인 부분을 주로 신경 썼는데 현 정부는 청와대가 주도하는 정책에 대한 모니터링까지 강화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에너지 담당 부처는 “공급인증서(REC) 가중치와 관련한 지엽적인 기사까지 청와대에서 연락을 해온다”며 “청와대가 이런 것까지 들여다본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늘공(늘 공무원·직업관료)’들이 청와대에서 겉도는 것도 문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예전에는 ‘늘공’과 ‘어공(어쩌다 공무원·외부인사)’에 대한 경계선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았는데 이번 청와대는 ‘어공’이 서로 선거캠프나 당에서 알고 지내던 분들이어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돼 있다”며 “청와대에 파견 나간 공무원 중 일부는 섞이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해온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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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처가 청와대의 분위기 파악이나 정보 획득에서 뒤처지고 있다. 문무대왕함 파견 부분만 해도 업무 지시 과정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빠졌다. 정책 추진도 청와대 의중을 생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기재부 내에서는 면세자 축소 논의가 사실상 금기어다. 소득세 면세자 축소는 실무선에서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예산 분야에서도 중소기업이나 서민 부담을 키우는 사업들은 자체검열이 이뤄지고 있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있다.

허울뿐인 공공기관장 인사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청와대의 톱다운식 내정이 늘면서 관가의 불만도 팽배해지고 있다. 법적으로 공공기관장 인사는 ‘공모→임원추천위원회→공공기관운영위원회 후보 추천→장관 최종 후보 임명 제청→대통령 임명’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청와대가 특정인을 미리 점찍은 상태에서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나 장관 제청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정부 관계자는 “투명성·도덕성을 강조한 현 정권에서도 낙하산에 가까운 인사가 많아서 국민들이 어떻게 볼지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공무원들은 청와대가 ‘만기친람’식 국정 운영을 하면서도 여론에 민감한 사안은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데도 실망이 적지 않다. 규제개혁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서비스업이나 의료·교육 등 핵심 규제개혁은 반발하는 기득권 세력들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려면 청와대에서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중요한 개혁과제에는 입을 닫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규제개혁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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