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하이난의 변신

송나라 최고 시인인 소동파는 당송팔대가로 불릴 정도의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일생은 좌천과 유배의 연속이었다. 22세의 나이에 장원급제해 관직에 발을 내디딘 그는 44세에 필화사건으로 후베이성 황저우에서 6년간의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이후 철종 즉위와 함께 복직됐지만 얼마 못 가 황태후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7년간의 긴 유배를 떠났다. 그의 두 번째 유배지는 충저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레이저우 반도와 마주하고 있는 중국 최남단 섬이었다. 수도 카이펑을 떠나 세상 끝으로 내몰린 그는 이 섬을 가리켜 ‘천애해각(天涯海角)’, 즉 하늘 끝 바다 끝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고 한다. 바로 하이난섬(海南島)이다. ‘동양의 하와이’로 불리며 매년 세계에서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하이난은 기원전 2세기 초까지는 광둥성, 북부 베트남과 함께 남월의 영토였다가 남월이 한무제에 의해 멸망하면서 비로소 중국 역사에 편입됐다. 비록 중국 영토가 되긴 했지만 이후로도 하이난은 오랫동안 유배지로 취급됐다. 특히 중원과 거리가 워낙 먼 섬인데다 덥고 습한 기후 탓에 유배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소동파 역시 유배를 마치고 복권됐지만 수도로 돌아오던 도중 먼 여행길의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심지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이 섬에 관심을 가졌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말았다.


하이난은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하면서 1950년 광둥성에 귀속됐고 1988년에는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22번째 성(省)으로 승격됐다. 본격적인 관광지로 각광 받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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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관심이 요즘 들어 남다른 것 같다. 연초에는 카지노 허용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8일 개막하는 보아오포럼에서는 홍콩을 능가하는 자유무역항으로 개발하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계획이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돼 가뜩이나 이 일대 영유권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주변국들을 긴장시킨다. 변방의 유배지에서 관광지로 탈바꿈한 하이난의 새로운 변신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두환 논설위원

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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