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바나나 제국의 몰락]다 똑같아진 바나나맛...재앙의 시작

■롭 던 지음, 반니 펴냄

1960년대 수십종이던 바나나

대량생산 통해 크기·맛 균일화

신종 병원체 창궐땐 멸종가능성

17만 작물품종 수집 바빌로프 등

생물다양성 지킨 영웅들도 소개




소품종 대량생산은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특히 종마다 재배하기 까다로운 식물의 경우는 번식력이 좋은 특정 종만을 재배한다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생물다양성 측면에서는 독이 된다. 특히 농업 산업이 세계화와 만나면서 이러한 ‘독성’이 더욱 강해져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먹을 거리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게 ‘바나나 제국의 몰락’의 주장이다. 책은 농업이 세계화되면서 먹을 거리의 다양성이 급격히 줄고 품종도 균일화되는 현상이 가져다줄 재앙이 아직까지 실감 나지 않는다면 ‘감자기근’으로 인해 아일랜드에서만 100만 명이 사망하면서 바뀐 역사를 떠올리라며 식물다양성이 사라져가는 현상에 대해 경고했다.



우선 책은 “1960년대 먹던 바나나와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와의 맛이 다르다”고 시작해 ‘어디에서 먹든 약간 달고 그렇지 않고의 차이만 있는 바나나인데, 부모 세대가 먹던 바나나는 과연 어떤 맛일까?’라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저자는 또 바나나의 대량생산과 세계화에 얽힌 복잡 다난한 사연과 역사를 들려준다.


1960년대 바나나는 수십 가지 품종이었지만, 현재는 가장 튼튼하고 맛 좋은 품종으로 개량된 소수의 종만이 남아 우리는 어느 지역에서나 똑같은 바나나를 먹게 됐다. 기업적 대량생산시스템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그리고 바나나의 세계화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 중심에는 미국의 거대 기업 유나이티드프루트사가 있다. 1950년대 중앙아메리카는 당시 소비되던 바나나 대부분을 수출했는데, 과테말라는 유나이티드프루트사의 바나나 농장의 핵심 지역이었다. 이 바나나 농장은 크기와 맛이 똑같은 예측 가능한 작품을 상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꺾꽂이로 번식되는 ‘클론 바나나’인데,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효율적이고 이상적이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한 종의 바나나만 생산하게 되면 나머지 종들은 사라지게 되며, 병원체가 창궐하면 바나나 전체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미 사라진 종을 다시 살려내기는 거의 불가능해 바나나는 멸종한다는 것. 실제로 1890년대 파나병은 바나나 농장을 휩쓸었고, 과테말라에서 주로 재배하던 품종인 그로미셸은 결국 멸종 위기에 처했다. 그로미셸을 잃은 후에는 파나병을 이길 수 있는 캐번디시를 똑같은 방식으로 경작했지만, 진화한 신종 파나명에 캐번디시 역시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캐번디시를 대처할 품종이 개발되지 않았고, 신종 파나병이 또 나타나게 된다면 더 이상은 바나나를 먹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관련기사



다양성의 상실로 인해 위협받는 건 바나나만이 아니다. 초콜릿, 옥수수, 쌀, 밀 등도 안전하지 않다. 과학자들은 30만 종 이상의 현생 생물에 이름을 붙이고 연구했지만, 우리 섭취하는 열량의 80%를 차지하는 작물은 열 두 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책은 또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불사했던 숨은 영웅들도 비중있게 소개했다. 특히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작물의 육종과 종자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수집한 최초의 인물이다. 바빌로프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씨앗과 재배방식을 수집했고, 그의 연구진은 17만 종이 넘는 작물 품종을 수집해 보관했다. 이후 발발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이 씨앗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바빌로프의 연구로 인해 종자은행들이 곳곳에서 생겨났는데, ‘운명의 날 저장고’라고 불리는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고가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핵전쟁, 소행성 충돌,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 등 지구적 규모의 재앙 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식량의 씨앗이 저장돼 있다. 이외에도 감자역병 연구에 일생을 바친 진 리스타이노를 비롯해 탄수화물이 풍부해 열대지방에서는 구황식물이었지만 현재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주목받는 카사바를 구한 한스 헤렌 등의 분투도 눈길을 끈다. 1만8,000원


연승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