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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의 유산

스티븐 호킹과 함께 한 점심식사의 추억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이고운 기자>


우리는 그의 농담을 가장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우리는 그의 농담을 가장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Rachel Feltman는 세계적인 과학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를 통해 “ 나는 스티븐 호킹과 함께 기념사진 찍을 기회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 점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와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스티븐 호킹과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추모의 글을 파퓰러사이언스에 게재 했다.

나는 그의 친구가 아니다. 지난 3월 14일 사망한 그는 운동신경 질병인 ALS 진단을 받은 후 50여년이나 생존했다. 다른 여러 과학 저널리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나는 그와 이야기해 본 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손주들에게 보여줄 만한 그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도 없다. 나는 그저 그와 함께 미트볼을 먹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에 만족한다.

3년 전, 나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학회에 갔다. 초대 메일에는 저널리스트들을 초대한다는 인사말이 장황하게 이어진 다음에 이론 물리학 이야기가 나왔다. 이론 물리학은 내 분야와는 많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이메일에는 독점 초대라고 적혀 있었다.

게다가 스티븐 호킹이 나온다고 했다.

당시 그는 73세였다. 그리고 내가 다니던 신문사는 나를 학회에 보내 줄 여력이 있었다. 스톡홀름은 8월에 가기 매우 좋은 곳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예약되지 않은 쇠데르말름 에어BnB 방을 구한 다음, 존경받는 물리학자들이 1주일 동안 블랙홀 정보 역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요량으로 길을 떠났다.

스티븐 호킹 외에도 그 곳에는 여러 유명 과학자들이 나왔다. 그는 학회 첫 날 1시간이나 지각해서 어느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을 중간에 끊어먹었다. 그러나 그의 도착은 모두의 숨을 죽였다. 마치 교회의 예배 시간과도 같은 정적이 감돌았다. 그것은 강연이 진행되던 KTH 왕립 연구소의 방이 한 때 예배당으로 쓰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 방 커튼 뒤에는 예수상이 모셔져 있다.

그는 해당 분야의 정말 뛰어난 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분위기를 확 풍겼다. 그런 분위기는 그가 말을 하기 시작하자 더욱 강렬해 졌다. 물론 그의 동료 연구자들 중 일부는 눈을 굴리거나 고개를 내젓는 등의 제스처로 그의 이론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 호킹 박사는 천재지만, 그처럼 뛰어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 곳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호킹이 왔다. 그가 과연 무슨 말을 할까?”라는 기대로 가득 차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내 자리는 호킹의 바로 뒷자리였다. 그의 보라색 구두끈과 컴퓨터 스크린이 아주 잘 보였다. 그 컴퓨터는 호킹이 세상에 자신의 말을 전하는 수단이었다. 소프트웨어에는 자동 완성 기능이 있었지만, 호킹이 볼의 움직임을 이용해 한 문장을 적으려면 1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호킹이 문장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던 내 가슴이 거칠게 뛰던 것이 기억난다. 크게 소리쳐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너무나 힘든 방식으로 말을 만들어 내는 그의 수고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단어 하나, 하나가 우리 시대에 대한 중대한 예언인 양 나는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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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문장은 연설문 원고를 다른 랩탑에 입력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바로 호킹의 특징이다. 그는 굳이 심오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어떤 학회 참가자가 일어서서 자신이 호킹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그 참가자는 자신이 매우 큰 병을 진단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병을 이길 용기가 있다고도 말했다. 그런 용기를 낸 것은 오직 호킹 덕택이라고 했다. 그는 호킹의 연구 업적 뿐 아니라 불치병에 맞서 수십년 간 살아온 강인함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호킹의 이론은 그 자체만 놓고 봐도 대단하다. 그 대단함은 그가 ALS에 맞서 투병하고 있다는 데서 두 배가 된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킹을 보고 힘을 얻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나는 어디에선가 학회 주최자와 인터뷰를 한 내용을 녹음했다. 순록 미트볼과 월귤(lingonberry) 소스를 앞에 두고, 그녀는 지난 몇 시간 동안 그녀와 동료들이 나눈 이야기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해주려고 애를 썼다. 인터뷰 중 그녀가 잠시 말을 끊고 누군가에게 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러고 나서 인사를 한 상대를 방 안의 유일한 이방인인 내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간단히 소개시켜 주었다. 그 상대는 다름 아닌 호킹이었다. 그는 바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내가 그 때 인터뷰 중이 아니었다면 미트볼을 먹으면서 호킹에게 말을 걸어볼 수 조차 있었을까?

호킹 이외에도 그 학회 장소에는 엄청난 학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킹의 시간이나 주의를 조금이라도 끌어 보려고 안달이었다. 호킹은 수많은 학생들이 물리학에 투신하게 만들었으며, 또 그가 그 방에 있던 과학 저널리스트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가 우리에게 준 것 중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학자이자 인간의 귀감으로 살아가는 것은 피곤한 노릇이다. 호킹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들을 부담스럽게 여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호킹이 말년을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누구라도 반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킹은 레디트 AMA를 하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몬티 파이슨> 노래를 부르면서, 일반인들에게 다른 태양계에서의 생명체 탐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려고 했다. 그는 학회에도 나왔고, 논문도 썼고, 시간 여행자들을 위한 파티도 열었다.

호킹은 묘한 유머 감각으로 전 세계인을 무수히 웃겼다. 나는 그 중에서도 스톡홀름 학회에서 한 농담을 제일 좋아한다.

그 농담의 내용은 이랬다. “이 강의의 목적은 블랙홀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절망적인 곳이 아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통념과는 달리 블랙홀은 영원한 감옥이 아닙니다. 블랙홀에서도 물체가 탈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블랙홀에 들어간 것 같아도 결코 포기하지 마세요. 나갈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By Rachel Feltman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이고운 기자 lgw@hmgp.co.kr

이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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