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육교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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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잘 버텨줘서 고마워.’ 2015년 9월 서울 동작구청이 노량진 학원가와 노량진역을 잇던 육교를 한 달 뒤 철거한다고 발표한 후 육교에 내걸린 파란 현수막에 적힌 글이다. 인근 학원가에서 재수를 하고 취업준비를 한 수많은 청춘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어 보는 이들의 공감을 샀다. 1980년 지어진 노량진육교는 시간당 2,800여명이 지나다닐 정도로 붐볐다. 하지만 안전문제와 노인 등의 통행불편 지적이 많자 철거하고 대신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35년간 고단한 수험생들과 동고동락을 하고 홀연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니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은 당연했다. 노량진육교 같은 도심 육교가 서울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불도저로 불렸던 김현욱 서울시장이 자동차 우선의 속도행정을 밀어붙이면서 곳곳에 육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서울 못지않게 지방에서도 육교 건설 붐이 일었다. 이 같은 ‘육교 사랑’은 1990년대 후반까지 계속돼 서울만 하더라도 1999년에 250개에 달했을 정도다.


상황이 변한 것은 2000년 들어서다. 교통정책이 차량보다는 보행자 위주로 바뀌면서 육교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전국 뉴스를 보면 ‘○○ 육교, 20년·30년 만에 역사 속으로’라는 소식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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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 예외가 아니어서 현재 150여개만 남았다. 종로구의 경우 2000년 17개에서 지금은 3개에 불과하다. 대다수 육교는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추지만 2000년 10월 철거된 안국동 로터리의 인사동육교는 제법 폼 나는 고별의식을 치렀다. 미술작가들이 인간의 발길을 묵묵히 감내해온 육교를 위로하듯 인조모피와 쿠션 매트로 28m 육교 전체를 덮은 퍼포먼스를 보름 동안이나 선보인 것이다. 전통문화 거리인 인사동이어서 이런 의식이 가능했지 싶다.

육교의 퇴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얼마 전 서대문 북가좌초등학교 사거리에 있던 육교가 철거되고 X자 횡단보도가 생겼다고 한다. 전국에 남아 있는 육교 대부분도 같은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보행 편의성이 높아지고 도시 미관이 나아지는 것은 좋은데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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