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최저임금·근로단축 역풍 편법 내몰린 중기]"주52시간 땐 인력 30% 더 필요...규정대로 하면 생존 불가능"

중견기업 23%가 300인 넘어...근로시간 단축 발등의 불

주말 출근 안하면 평일에 잔업 등 근무 형태 변경 다반사

포장·커팅 등 단위적으로 끊기는 파트는 도급으로 전환도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환경이 급격히 바뀌면서 이에 적응하기 힘든 중소기업들이 편법에 내몰리고 있다. 경기도 한 공단의 부품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B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환경이 급격히 바뀌면서 이에 적응하기 힘든 중소기업들이 편법에 내몰리고 있다. 경기도 한 공단의 부품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정부는 우리더러 법을 지키라고 하는데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도 답이 안 나와요. 현재 노동시장은 중소기업들이 편법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경기도 파주의 출판단지에서 인쇄전문기업인 B사를 운영하는 이진욱(가명) 대표는 최근 인사·노무 담당 임원들과의 마라톤회의 끝에 고용형태를 바꾸기로 했다. B사는 현재 60여명의 정규직 근로자들이 주야 맞교대로 일하고 있다.


오는 2020년에 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현행 근무체제를 3교대로 바꾸고 생산직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공장을 돌릴 수 있다. 하지만 현 수익 구조로는 도저히 추가 인력 채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 대표는 동종업체 간 정규직 인력 교차활용을 떠올렸다. 정규직 직원들은 주 4일 정도만 근무시키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말에는 다른 업체의 정규직 직원을 아르바이트로 쓰는 방식이다.

인쇄업체들은 명절이나 선거철 등 일감이 많이 몰릴 때는 인력 파견업체를 통해 생산직 근로자를 알바 형태로 고용한다. 이렇게 되면 B사는 1년 반 뒤 근로시간이 단축되더라도 기존처럼 공장은 계속 돌리면서 법의 단속망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돌려막기식’ 고용은 얼핏 회사의 직원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자리 총량은 그대로라는 점이다. 일종의 편법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회사는 생산 라인을 주말에도 돌려서 좋고, 정규직 직원들은 주말에는 다른 회사에서 근무해 줄어든 급여를 충당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이라고 귀띔했다.

현행 주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은 기업 규모에 따라 올 7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과 ‘일자리 늘리기’라는 일석이조를 기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현장의 상황은 딴판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적응하기 힘든 기업들이 편법으로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가 일종의 기업 쪼개기인 소사장제다. 마산 주물업체인 D사는 최근 조형 파트와 후처리 공정 등을 중심으로 별도 법인을 만들고 도급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기존에 파트를 책임지던 부장급 직원을 소사장으로 앉혀 개인사업체로 등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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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의 정혁태(가명) 대표는 “최근 일감이 몰려들면서 후처리 인력이 갑자기 늘어났는데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까지 적용되면 회사 안에서 끌고 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별도 법인으로 떼어낸 후) 필요할 때 일감을 주고 그에 맞게 비용을 지불하고, 별도 법인 입장에서도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에서 일감을 받으며 급여 수준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식품용 포장용기 제조업체 역시 현재 20여명 수준의 사업장을 예외업종 적용을 받을 수 있는 5인 미만 업체로 회사를 쪼개는 지입 사업을 검토 중이다. 또 다른 인쇄업체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공인노무사에 해결방안을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누구도 해고할 수 없다면 추가 수당을 주거나 5인 미만 사업체로 쪼개는 수밖에 없다는 것뿐이었다”며 답답해했다.

이 같은 회사 쪼개기는 일종의 ‘꼼수’지만 뒤집어보면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서병문 주물조합 이사장은 “주 52시간을 지키려면 회사 입장에서는 인력을 추가로 25~30% 정도 채용해야 하고 직원들은 급여가 기존보다 15% 이상 줄어든다”면서 “정부가 현장을 모르고 정책을 밀어붙이니 업체들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편법을 쓰는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7월이면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해야 하는 300인 이상 중견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4,000여개의 중견기업 가운데 300인 이상 사업장은 23%에 달한다.

1,100여명의 생산직 직원들을 두고 있는 제조설비업체 E사는 전체 공정 중에 포장이나 커팅 등 단위적으로 끊기는 파트는 도급 형태로 나눠 계열사나 별도 법인에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우리 공장은 주야 2교대로 1주일에 68시간씩 가동해 납기를 맞춰왔다”며 “이제는 이게 불법이 되니 일부 조는 주말 근무 없이 평일에만 잔업하고 다른 조는 평일 잔업 없이 주말에만 근무하는 방식으로 근무조 일부 변경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라 인건비 비중이 높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상여금으로 나갈 돈을 떼어 내 기본급에 반영하는 곳도 늘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한 단조업체 관계자는 “전체 매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5~20% 수준인데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20~25%까지 늘었다”며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력부품 전문제조업체인 F사도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노사 합의를 통해 보너스 700% 지급분을 기본급에 포함시켰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2020년 1만원’ 최저임금 공약에만 집착하면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논란만 키운다”며 “비현실적인 약속은 철회하고 속도를 조절해가며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민정·이재유·서민우·심우일기자 ingaghi@sedaily.com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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