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나를 ‘주말 아빠’로만 기억하게 할 순 없습니다.”
미국 공화당의 의회 1인자이자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꼽혔던 폴 라이언 하원의장(48·위스콘신)이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에 20년간 봉직한 의회를 떠나게 된다.
라이언 의장은 11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가 나의 마지막 의원생활이 될 것”이라며 “하원의장으로서 공화당을 이끌며 있었던 모든 일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1988년 28살의 나이에 위스콘신주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내리 10선을 하는 등 40대 기수론의 선봉에 선 정치인이자 미 입법부 수장으로 우뚝 선 그가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가족이다. 그는 정계를 은퇴한 뒤 남편과 세 자녀의 아버지로 돌아갈 계획이다.
라이언 의장은 “우리 아이들은 내가 처음 당선됐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세 명 모두 10대”라며 “내가 출마해 새 임기를 맡으면 아이들은 나를 ‘주말 아빠’로만 기억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 내 딸의 나이 때인 1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나중에 인생을 돌아봤을 때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라이언 의장은 의회 생활 중에도 주말이면 가족이 있는 위스콘신주 제인스빌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의 선거운동 자원봉사에 우연히 나섰다가 정계와 인연을 맺은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밋 롬니의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며 정계에 샛별로 떠올랐다. 이후 2015년 베이너 하원의장이 강경 보수파와의 갈등으로 물러난 후 의장직을 맡아 의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는 화려한 정계 이력과 달리 어릴 적 가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16세 때 심장마비로 아버지를 잃은 후 사회보장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등 극심한 가난과 싸워왔다. 학창시절에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할머니를 돌보며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마이애미 대학에 입학해서도 웨이터와 피트니스 트레이너 등의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조달했다.
일각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갈등이 그의 은퇴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그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후보의 막말 파문과 ‘음담패설 녹음파일’ 등이 공개되자 지원 유세를 중단하는 등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예상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여러 국정과제 추진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라이언 의장이 은퇴 의사를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라이언 의장은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이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업적을 남길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