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文, 金 사임 첫 언급…등 돌린 민심에 사퇴불가서 한 발 뺄수도

['김기식 거취' 조사 결과에 맡긴 文]

野·시민단체에 與까지 비판 거세

지방선거에 미칠 악영향 고려

선관위 다음 주 결과가 분수령

'하자 없다'땐 옹호 명분 세울듯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자산운용사업 신뢰구축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 참석한 뒤 떠나고 있다. /송은석기자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자산운용사업 신뢰구축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 참석한 뒤 떠나고 있다. /송은석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서면 메시지를 통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과 관련한 논란의 전면에 나선 것은 흔들리는 민심을 방치할 경우 정권 차원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추가경정예산·개헌 등 대형 과제를 앞두고 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권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야권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야권과 일반시민은 물론 여당과 시민단체, 정의당 등 진보진영에서도 김 원장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김 원장을 비호해온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질 상황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메시지를 통해 다소나마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 원장을 둘러싼 여러 논란의 적법성 여부 판단을 요청한 청와대 질의에 대해 검토를 거쳐 이르면 다음주 중 결과를 전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별도로 검찰이 김 원장의 관련 의혹들에 대해 조사를 마치고 결론 내기까지는 약 1~2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정치권은 관측하고 있다. 해당 기간 중 김 원장은 자신의 거취를 숙고할 수 있고 문 대통령과 청와대 역시 만약에 대비한 후속 인선 여부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단에 앞서 시간만 끌 경우 여권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민심의 역풍을 안고 표밭을 개척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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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왜 인사 결단 못 내렸나=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6~9일 김 원장의 국회의원 시절 해외 출장 관련 의혹 등에 대해 재검증을 한 뒤 모두 공적 목적의 출장이었고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같은 결과를 10일 김의겸 대변인을 통해 공개했다. 그러나 당시 정무 라인을 비롯한 일부 참모들은 섣불리 청와대가 김 원장을 공개적으로 두둔하는 데 대해 내부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이후 추가 의혹이 터지고 심지어 의원 시절 기부금 처리 문제로 논란이 확산되는가 하면 급기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청와대 내에서도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고민이 컸다고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깔끔하게 김 원장의 거취 문제를 결정짓지 못한 것은 후속 인선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적법 여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이 나쁘다고 김 원장을 해임할 경우 앞으로 후임자나 다른 고위공직자를 임명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곤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창조론을 믿었다는 이유로 여론몰이를 당해 낙마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의 사태를 보면서 문 대통령이 고위공직자의 인선 기준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듭해왔다”며 “그나마 이런 불확실한 국회 인사 검증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이 국회의원 출신을 중용하는 것이었는데 의원 출신인 김 원장마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한층 인선의 부담감이 커졌다”고 전했다. 인사 검증대에서의 ‘의원 불패’ 신화가 이번 사태로 깨진 데 따른 현실적인 인사 고충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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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상황인식과 전망은=이번 메시지에서 드러난 문 대통령의 심경 중 하나는 관료에 대한 깊은 불신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서면 메시지를 통해 인사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에 대해 “주로 해당 분야의 관료 출신 등을 임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이 개혁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관료의 의지를 믿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김 원장에 대한 의혹 제기를 개혁에 저항하는 금융계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김 원장 관련 의혹 제기의 출처를 금융권 등으로 보고 있으며 지금 김 원장을 낙마시키면 앞으로 개혁정책은 좌초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와 여권은 이번 서면 메시지를 기점으로 현 정국을 ‘개혁 대 반개혁’ 구도로 재편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김 원장 사태를 계기로 실망한 진보성향 지지층을 재결집시키고 이를 동력으로 삼아 6·13지방선거까지 대야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정치권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다만 앞으로 야권이 한층 공세를 높이며 추가적인 의혹을 터뜨릴 경우 자칫 김 원장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에 대한 정권 차원의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커 김 원장의 선제적 결자해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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