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가 오는 2021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시가평가 기반의 재무건전성제도(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을 앞두고 자본확충과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해외 투자 규제에 발목을 잡혀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규제가 보험사의 해외유가증권 투자 비중을 일반계정 총자산의 30%(특별계정은 20%) 이내로 제한한 보험업법 제106조다. 금융위원회에서 2015년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제한을 없애겠다고 약속하고 지난해 5월 국무회의에서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국회 문턱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정무위 법안소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규제를 풀어준다는 정부 약속만 믿고 해외 투자를 늘려온 보험사들은 비상이다. 해외 투자금액이 법적 한도의 턱밑까지 차 더 이상 해외유가증권에 투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생보업계의 총운용자산 656조2,111억원 가운데 해외유가증권은 87조1,978억원으로 13.3%를 차지했다.
업계 평균으로 보면 투자 한도인 30%까지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회사별로는 편차가 크다. 특히 한화생명(24.1%), 교보생명(19.3%), 미래에셋생명(21.1%), NH농협생명(20.2%), 동양생명(22.4%), 등 대형사들이 20%를 넘어선 경우가 많다. 이 정도만 되면 평가 시점 등에 따라 비중이 달라지는 등 변동성 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 자산에 추가로 투자하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특히 IFRS17이 보험업계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해외 장기채권 투자 수요가 더욱 커졌는데 해외투자 제한 때문에 사실상 손 발이 묶였다고 보험업계는 하소연한다. 보험사들은 IFRS17과 지급여력비율(RBC)을 적용할 때 금리변동에 따른 자산과 부채의 변동폭이 작아야 자본 변동성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기 때문에 만기가 긴 장기채권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장기채권의 경우 국민연금 등 큰손들이 대부분 거둬가기 때문에 보험사가 매입할 수 있는 채권 규모는 한계가 있다.
국내 장기채권보다 해외 장기채권의 수익률도 높아졌다. 미국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해외 투자에 나서야 차익을 키울 수 있는데 법 개정이 미뤄지면서 투자 적기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금리가 올라가면 자금 조달과 자산 투자에 드는 비용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개정법안이 언제 국회를 통과할지 몰라 투자전략을 어떻게 수립해야 할지 고민”이라면서 “입법 과정이 지연되면서 시장 불확실성만 키우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회사채에 투자할 때 해외 신용등급을 국내 신용등급으로 환산해 RBC를 산정하도록 하면서 해외 신용등급에 사실상 불이익을 주는 보험업감독규정도 보험사들의 해외 투자 확대를 옥죄고 있다. 현행 규정에서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신용등급을 국내 신용평가기관 전환등급으로 전환할 경우 3등급을 높인다. 하지만 S&P의 신용등급 기준이 국내 신평사에 비해 훨씬 엄격한 점을 감안하면 3등급 상향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지적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최소 5등급은 올려야 해당 기업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보험업계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투자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보험사들은 해외투자 확대를 통해 글로벌 자산 운용 경험을 축적할 수 있으며 이는 보험산업의 수익성 제고와 더불어 장기적으로는 해외 진출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